일년에 한두번 정도 미칠 듯이 그리워져서 듀스의 시디를 꺼내 듣는다. 가요를 거의 듣지 않는 내게 있어서 특별한 존재인 듀스는 내겐 일종의 항우울제 같은 존재다.
나는 듀스의 시작부터 그 끝까지 이현도의 음악적인 팬이었다. 그러나 너무 '완벽'한 조건에다 어딘가 인간적으로 끌린다고 말하기는 정말 힘들었던 현도, 그에 비해 김성재는 참 착하고 조용한 사람이었고, 그래서 듀스의 활동기에 나는 인간적으로 훨씬 끌리던 김성재의 팬이라고 말하곤 했었다. 좋은 집에서 태어나 기 한번 죽지 않고 성장해 밝고 자신감 넘치고 반짝이는 재능으로 충만했던 '왕자님' 타입의 이현도에 비해, 김성재는 서민가정에서 태어나 말이 없고 수줍음을 참 많이 타는 사람이었다. 그 흔한 자기PR조차 용인되기 어려운 시절이기도 했지만, 자신감과 타고난 재능과 젊음의 오만함으로 전신으로 빛을 내는 이현도 뒤에서 김성재는 항상 존재감 없이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두 사람이 함께 있을 때면 늘 그늘에 묻혀 버리던 김성재, 매체와의 인터뷰 마다마다 진솔하게 애정이 넘치는 PR로 성재의 존재를 부각시키려 정말 애쓰던 현도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당시의 듀스 팬이었다면 이현도의 김성재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컸었는지 대부분 기억할 것이다. 그래서 각종 루머와 불화설과 함께 듀스가 잠정해체 했을 때, 두 사람이 언젠가는 처음의 시작과도 같은 형태로 다시 돌아오리란 걸 믿어마지 않았었고, 이현도의 음악으로 날개를 달고 나타난 김성재의 솔로 음반은 그 연장 선상이었기에, 그 날개를 채 펴지도 못한 어느 추운 겨울날, 성재의 불의의 사망(타살)소식은 감당하기 어려운 크기의 쇼크였다. 나의 경우 그의 죽음을 개인적인 충격으로 까지 받아 들이지는 않았지만ㅡ이미 내 눈물은 1993년 리버 피닉스가 약물과용으로 급사했을 때 강처럼 흘렀고 이듬해 커트 코베인이 권총 자살했을 때 완전히 메말라버렸다ㅡ그가 나, 그리고 우리의 곁을 떠난지 1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깊은 감상에 젖을 정도로는 그를 사랑했었던, 것 같다. 음악적인 면에서 한국 대중 음악사의 한 줄기를 바꿔놓은 현도의 '하늘이 내린 선물(gift)'을 사랑했다면 듀스의 '눈에 보이는 형태'를 만들어준 성재는 그 선물을 내게 전해준 messenger 같은 존재였다.
성재가 살아 있었다면 나보다 나이가 많았을 텐데, 그는 이젠 영원히 젊고 아름다운 스물 세살로 남아 있다.
이젠 나보다 먼저 떠난 어떤 사람들 보다도 더 나이를 먹어버린 나.
먼저 떠난 그는, 또 그 사람들은 지금 어디쯤에 가 있을까.
듀스「우리는」
김성재「말하자면」
(솔로데뷔 첫 무대. 사망 전날 공연)
나는 듀스의 시작부터 그 끝까지 이현도의 음악적인 팬이었다. 그러나 너무 '완벽'한 조건에다 어딘가 인간적으로 끌린다고 말하기는 정말 힘들었던 현도, 그에 비해 김성재는 참 착하고 조용한 사람이었고, 그래서 듀스의 활동기에 나는 인간적으로 훨씬 끌리던 김성재의 팬이라고 말하곤 했었다. 좋은 집에서 태어나 기 한번 죽지 않고 성장해 밝고 자신감 넘치고 반짝이는 재능으로 충만했던 '왕자님' 타입의 이현도에 비해, 김성재는 서민가정에서 태어나 말이 없고 수줍음을 참 많이 타는 사람이었다. 그 흔한 자기PR조차 용인되기 어려운 시절이기도 했지만, 자신감과 타고난 재능과 젊음의 오만함으로 전신으로 빛을 내는 이현도 뒤에서 김성재는 항상 존재감 없이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두 사람이 함께 있을 때면 늘 그늘에 묻혀 버리던 김성재, 매체와의 인터뷰 마다마다 진솔하게 애정이 넘치는 PR로 성재의 존재를 부각시키려 정말 애쓰던 현도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당시의 듀스 팬이었다면 이현도의 김성재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컸었는지 대부분 기억할 것이다. 그래서 각종 루머와 불화설과 함께 듀스가 잠정해체 했을 때, 두 사람이 언젠가는 처음의 시작과도 같은 형태로 다시 돌아오리란 걸 믿어마지 않았었고, 이현도의 음악으로 날개를 달고 나타난 김성재의 솔로 음반은 그 연장 선상이었기에, 그 날개를 채 펴지도 못한 어느 추운 겨울날, 성재의 불의의 사망(타살)소식은 감당하기 어려운 크기의 쇼크였다. 나의 경우 그의 죽음을 개인적인 충격으로 까지 받아 들이지는 않았지만ㅡ이미 내 눈물은 1993년 리버 피닉스가 약물과용으로 급사했을 때 강처럼 흘렀고 이듬해 커트 코베인이 권총 자살했을 때 완전히 메말라버렸다ㅡ그가 나, 그리고 우리의 곁을 떠난지 1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깊은 감상에 젖을 정도로는 그를 사랑했었던, 것 같다. 음악적인 면에서 한국 대중 음악사의 한 줄기를 바꿔놓은 현도의 '하늘이 내린 선물(gift)'을 사랑했다면 듀스의 '눈에 보이는 형태'를 만들어준 성재는 그 선물을 내게 전해준 messenger 같은 존재였다.
성재가 살아 있었다면 나보다 나이가 많았을 텐데, 그는 이젠 영원히 젊고 아름다운 스물 세살로 남아 있다.
이젠 나보다 먼저 떠난 어떤 사람들 보다도 더 나이를 먹어버린 나.
먼저 떠난 그는, 또 그 사람들은 지금 어디쯤에 가 있을까.
듀스「우리는」
김성재「말하자면」
(솔로데뷔 첫 무대. 사망 전날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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