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Results for {박찬호} : 4 POSTS

  1. 2005/10/25 박찬호, 11월에 웨딩마치!
  2. 2005/04/24 2승 삼진까지의 과정.
  3. 2005/04/15 돌아온 히어로의 역투.
  4. 2004/07/26 우리에게 희망을 주었던 너.

박찬호, 11월에 웨딩마치!

찬호, 제주도서 전격 변경
재일동포 2세 박리애씨와 결혼...친척만 초청


'코리안 특급' 박찬호(32.샌디에이고)의 결혼식 장소가 제주도에서 하와이로 전격 변경됐다.

재일동포 2세 박리애씨(29)와 1년여 교제중인 박찬호는 11월말 하와이에서 웨딩마치를 울리기로 하고 제반 절차를 진행중인 것으로 24일 밝혀졌다. 박찬호는 곧 이같은 결혼계획을 공식 발표할 예정이다. 박찬호는 당초 오는 12월 중순 제주에서 국내외 하객들의 축복속에 성대히 결혼식을 치를 계획이었다. 하지만 디비전시리즈에 진출한 소속팀인 샌디에이고의 엔트리에서 탈락한 뒤 '하와이 결혼식'으로 방향을 틀었다. 명예를 중시하는 박찬호는 엔트리에서 제외된 뒤 "자존심이 상한다. 팬들에게도 면목이 서지않는다"며 하객들의 규모도 축소하고 결혼식 장소도 하와이로 전격 변경했다는 것...

more..



드디어 하시는 군요.. :)

인생의 파고에는 늘 고저가 있음을 생각합니다. 좋은 반려분 만나 꼭 재기에 성공하세요. 당신의 플레이에 하루의 힘을 낼 수 있었던 시기, 그 모습 다시 한번 꼭 보고 싶습니다. 축하해요.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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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승 삼진까지의 과정.


같은 1승이라도 찬호의 1승은 갖는 무게가 다르다.
그는 야구에 관심없는 나를 브라운관으로 끌어들이는 유일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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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히어로의 역투.



....겨울은 길었다.(글썽글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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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차인표 "찬호에겐 아내가 필요해"  
작성자 chainpyo_2005    입력시간 2004.07.26 9:33


찬호의 모텔방에는 작은 책상이 있었고, 그 위에 노트북과 휴대용 DVD 플레이어,그리고 몇 개의 한국영화 DVD가 있었습니다. 그 옆에는 소파가 있었는데, 저와 찬호 매형 둘이 앉으니까, 더 이상 자리가 없어서, 찬호와 헌용이는 침대에 걸터 앉았습니다.

찬호 동생 헌용이는 한의사입니다. 야구로 치자면, 루키 한의사죠. 갓 자격증을 따서, 로스앤젤레스 한의원에서 보조의사로 일하고 있으니까요. 헌용이는 자기의 가방에서 로스앤젤레스의 한 식당에서 사온 “떡” 한 상자를 꺼내놓았고, 우리는 떡을 나누어 먹었습니다.

찬호: 맛있다. 형도 좀 먹어요. 이 떡 맛있게 생겼다.

맛 없었습니다. 우리와 함께 사막을 여행해 오느라 이미 따뜻해진 떡은 저만큼 피곤하고 힘이 없어 보였습니다. 떡을 먹은 후, 찬호는 침대에 옷을 벗고 엎드렸고, 루키 한의사 헌용이가 수십개의 침을 꺼내, 침을 놓기 시작했습니다. 찬호는 어린아이 마냥 비명을 질렀고, 헌용이는 허준처럼 진지하게 찬호를 달래면서 여기저기에 침을 놓았습니다.

두 형제의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찬호의 비명소리를 자장가 삼아, 저는 소파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저녁 무렵, 나는 한국 음식을 사주겠다며, 그들을 데리고 나왔습니다. 찬호가 나에게 다른 사람들을 불러도 되겠느냐며 양해를 구하더군요. 오전에 야구장에 왔던 카메라 기자와 현재 아리조나에서 찬호처럼 재활훈련중인 메이저리그 시애틀 팀에 소속되어 있는 백차승 선수 였습니다.

우리 일행들, 찬호, 찬호 매형, 헌용이, 백차승 선수, 한국기자, 그리고 저, 이렇게 여섯 명은 아리조나 피닉스에 있는 한국식당에서 저녁을 먹었습니다. 그 식당 벽에는 찬호와 김병현 선수의 유니폼이 걸려 있더군요. 찬호는 밥을 먹는 내내 백차승 선수의 건강과 다른 후배들, 김병현, 최희섭, 김선우 등을 걱정했습니다. 저녁 식사 후, 식당 옆에 붙어 있는 한국물건을 파는 가게에 들렀습니다. 로스앤젤레스 돌아가기 전에 찬호의 장을 봐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거기서 그는 또 햇반과 사발면을 짚었습니다. 찬호의 매형은 며칠 더 남아 찬호를 돕기로 하고, 저와 헌용이는 밤 9시30분 비행기로 로스앤젤레스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헌용이는 다음날인 월요일 아침에 출근을 해야 하고, 저는 엘에이에서 공연팀과 다시 합류를 하여 다음 공연을 위해 시카고로 떠나야 했기 때문입니다.

날은 어두워 지고, 찬호는 저와 헌용이를 피닉스 공항까지 바래다 주었습니다. 극구 싫다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이미 저와 헌용이의 엘에이행 비행기표까지 사놓은 상태였습니다. 9시간동안의 만남은 피닉스 공항에서 끝이 났습니다. 찬호는 돌아가고, 저와 헌용이는 밤 9시30분에 출발하는 엘에이행 비행기를 기다렸습니다. 매번 찬호가 한국에 들어왔다가 나갈 때 이별이 반복되었었지만, 이번처럼 가슴이 시린 적은 없었습니다.

찬호와 공항에서 헤어짐으로 하루동안의 아리조나 여행이 끝날 것이라 생각했던 저는 잠시후 오산을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밤 9시30분 피닉스 공항에서 우리를 태우고 갈 비행기가 새벽 1시30분으로 연기가 된 것입니다. 어쨌든 새벽에라도 엘에이에 도착만하면 시카고로 가는 아침 10시 비행기를 탈수 있기에, 헌용이와 저는 공항 의자에 앉아 기다렸습니다.

의자에서 잠이 들었는데, 깨어보니 새벽 1시였습니다. 이미 공항은 클로스 된 다음 이었고, 비행사 직원이 나와 멘트를 시작했습니다.

멘트의 시작이, We would like to apologize.. (사과 드리겠습니다..)하고 나오는데, 불길한 예감이 들었습니다.

아뿔싸... 내용인즉슨, 엘에이행 비행기가 날씨 관계로 취소가 되었다는 거였습니다. 이 비행기를 못타면, 엘에이에서 아침에 공연팀과 합류를 못하고, 합류를 못하면, 시카고를 못가게 되고, 시카고를 못가면, 공연팀은 “지져스, 지져스” 뮤지컬에서 지져스 없이 공연을 해야할 처지인데... 비행기가 취소가 되었던 것입니다. 항공사 직원은 승객들에게 호텔 숙박권을 나눠주기 시작했습니다. 자고 내일 비행기로 가라는 겁니다.

헌용이와 저는 피닉스 공항 밖으로 빠져나왔습니다. 헌용이는 찬호에게 전화를 해서 일단 형을 깨우자고 했지만, 저는 푹 자고 아침에 또 운동나가야 하는 그를 깨우고 싶지 않았습니다. 또 깨운들, 별 방법도 없었구요. 새벽 1시, 아리조나 피닉스 공항 국내선 청사 밖에는 사람도, 차도 하나 없이 적막했습니다. 한참을 걸어가, 일단 택시를 잡았습니다. 흑인 기사가 앉아 있더군요. 약간 무모하긴 하지만, 이 방법 밖에는 없었습니다. 어디를 가냐고 묻는 기사에게, 저는 “LA"라고 대답했습니다.

택시기사가 돌아 보았습니다. 아마 비행기가 취소되어 버린 저희 만큼이나, 이 택시기사도 황당했을 것입니다. 새벽 1시에, 피닉스 공항에서 덩치가 큰 동양인 두명이 6시간에서 7시간은 족히 걸릴 엘에이를 가자고 하니 말입니다. 택시 기사는 고개를 돌려 저와 헌용이를 번갈아 봤고, 우리는 최대한 선량한 표정을 지으며 그를 보았습니다. 피닉스 공항을 출발한 택시기사는 두가지 조건을 걸었습니다.

현찰 500불을 선금으로 지급하고, 자기 친구를 한명 더 태우고 가겠다는 거였습니다. 혼자서는 불안했겠죠. 아마 무서웠을 겁니다. 결국, 400불을 지급하기로 하고 친구를 태우는데 동의를 했습니다. 택시기사는 자기가 사는 동네로 차를 몰아, 길거리에서 자신의 흑인친구 한명을 태웠습니다. 그래서, 앞좌석에는 피닉스에 사는 400불을 벌어야 하는 흑인 두명, 그리고 뒷좌석에는 무조건 엘에이에 가야하는 한국인 두명이 탄 코미디같은 자동차 여행이 시작되었습니다. 피곤한 헌용이는 깊은 잠에 빠졌고, 우리가 탄 차는 사막 한가운데의 휴게소에 들렸습니다.

화장실을 가는게 문제였습니다. 이미 돈은 선불로 주었고, 혹시라도 제가 화장실 간 사이에 앞에 탄 두 사람이 헌용이를 밀어버리고, 그냥 떠나면...??? 그래서 생각한 게, 화장실을 모두 같이 가는 거였습니다. 우리는 아주 친한 친구들처럼, 화장실을 모두 같이 갔다가, 같이 돌아왔습니다. 두 번을 그렇게 하고 나니, 아침 8시경, 엘에이에 도착을 했습니다. 한 일곱시간 같이 있다보니, 앞에 탄 흑인들은 나보다 더 선량한 사람들이라는 걸 알게 됐고, 엘에이 도착 후, 감사의 표시로 100불을 더 주었습니다. 그들은 “Thank you. I love Korean"을 외치며 돌아갔습니다. 이것으로 아리조나 여행기는 끝이 났습니다.

하루동안의 여행중, 자동차 안에 있던 시간은 14시간, 땅을 밟고 있던 시간은 10시간이었습니다. 박찬호.. 어려운 IMF 시절, 그의 경기를 보면서, 어른들은 힘을 얻었고, 아이들은 꿈을 길렀습니다. 그는 젊은시절 자신이 누릴수 있는 모든 자유를 담보로 훌륭한 메이저리거가 되었고, 미국인들은 그에게 거액의 연봉을 주면서 화답을 했습니다. 그가 버는 돈은 미국인들의 돈입니다.

그러나, 그 돈은 고스란히 한국으로 건너와, 투자되고, 장학사업에 쓰여지고, 물론 찬호 자신을 위해서도 쓰여집니다. 박찬호는 로또 당첨이 되어서, 어느날 운좋게 거액을 만진 인물이 아닙니다. 아무도 안나갈 때, 홀로 미국으로 건너가, ABCD부터 배우면서, 밥먹고 일어나 야구만 하면서, 자신의 몸뚱아리 하나로 메이저리그를 제패한 인물입니다.

그런 그가, 요즘 예전 같은 성적을 못 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슬럼프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더 큰 도약을 위해 재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전과 똑같이, 아니면 예전보다 더 열심히 땀을 흘리는 모습을 직접 보고 왔기에 할 수 있는 말입니다. 박찬호는 반드시 다시 일어설 것입니다.

혼자는 못할지언정, 예전처럼 우리 국민들이 박찬호를 응원하고 격려해 준다면, 그 힘으로 일어설 것입니다. 또다시 경제가 어려워진 지금, 다시 한번 어른들에게는 힘을 주고, 아이들에게는 꿈을 주게 될 것입니다. 저는 엘에이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한 가지 결심을 했습니다. 올 시즌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올 찬호에게 여자친구를 소개시켜주어,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데 도움을 주겠다는 결심입니다.

다음번에 미국으로 찬호를 보러 갔을 때는, 찬호 혼자가 아닌 둘을 보고 싶고, 한국 DVD가 아닌 결혼사진첩을 보고 싶고, 사발면이 아닌 보글보글 끓는 김치찌개를 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차인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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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힘들었던 그 때, 오늘이 지나 또 다른 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을 그의 공 하나에 실어 던져주었던 그 때를, 근무시간이라 TV를 볼 수 없는 시간이면 몰래 도둑청취하던 라디오와, 점심식사도 거르고 옹기종기 모여 응원하던 사람들과 나누던 기쁨 같은 것, 지금도 잊지 않고 있다.
찬호를 응원한지 벌써 십년이다. 나름대로 이렇게 오랫동안 보아왔기에, 다시 돌아올 그날이 있을 거란 희망은 그렇기에 분명한 '사실'인 거다.

당신을 신뢰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는 걸 잊으면 안된다.
TAG 박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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