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그 후
판결의 충격은 대단히 맹렬했다. 사건에 관련된 누구도 똑같은 여파를 겪지 않았다.
캐벌리 판관과 그의 아내는 재판의 막대한 긴장과 피로로 인해 신속히 병원에 입원하여 건강상태를 점검했다. 그는 재판장석으로 돌아온 후 이혼사건만 맡았다. "나는 건강을 잃었다." 그는 기자들에게 말했다.
제이콥 프랭크스는 자신의 막내 아들을 잃은 슬픔에서 회복되지 못한 채 몇년 후 사망하였다. 아들의 죽음 후 그리고 공판기간 동안 망상(妄想)증세를 겪던 엄마 플로러는 결국 그녀의 이지(理智)를 되찾았다. 그녀는 남편의 죽음 후 재혼했다.
아들의 범죄 전에 심한 심장마비를 겪어 쇠약해진 앨버트 레브는 재판 도중 자신의 고향도시인 샤를부아(*역주:캐나다 퀘벡의 소도시)의 사유지로 이사하여 살다가, 아들의 판결이 끝난 몇달 후 사망하였다. 아들이 5월에 체포된 이후, 그는 자신의 아들을 결코 만나지 않았다.
네이선 리오폴드의 아버지는 1929년 심부전증으로 사망하였다. 수치와 슬픔은 그를 켄우드의 집에서 떠나게 했다. 그의 두명의 아들들은 자신의 성(姓)을 바꾸었고, 불명예스러운 가족의 치욕을 지웠다.
클래런스 대로우는 또다시 하나의 대형 사건을 맡았다: 교육 문제에 관련되어 테네시의 한 교사를 변호하기 위해 스콥스 사건, 이른바「진화론 재판(The Monkey Trial)」(*)으로 역사에 남은 재판을 맡았다. "구변좋은" 웅변가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이 그의 상대자였다.
(*역주:미국에서는 1925년까지 진화론에 관한 교육을 금지하고 있었다. 테네시주(州)에서는 종교적 법안인 '버틀러법'을 제정하기도 했다. 이에 최초로 반기를 들고 나온 열렬한 다위니스트 조지 래플리는 이 '혐오'법안을 철폐시킬 것을 주장했고, 그의 설득 끝에 선두에 나서게 된 학교교사가 존 스콥스였으며 변호사는 형사변호로 명성(악명)높은 클래런스 대로우였다. 상대측 변호사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은 격렬한 기독교 근본주의자(창조론자)였다. '종교 대(對) 학문'의 대결구도로 번진 이 재판은 결국 진화론의 패소로 끝났다.)
처음에, 형무소 관리는 리오폴드와 레브를 따로 떨어뜨려 놓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끝까지 함께 있었다. 그들의 인생은 과감하게 변해버렸다. 1년후 기자가 그들을 만나러 갔을 때, 리오폴드는 인터뷰를 거절했다. 레브는 크게 바뀌었다. "나는 당신과 말할 수 없다. 무언가 말하고 싶지만, 미움받는 것이 두렵다."
1932년, 두사람은 죄수들을 위한 학교를 열었다. 다른 교육받은 수용자들과 함께, 리오폴드와 레브는 관리업무를 맡았고 학급을 가르쳤다. 두 사람은 갱생의 징후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들의 삶, 그들의 지적인 재능과 그들의 값비싼 교훈으로 인해, 그들의 인생이 진정으로 건설적인 방향으로 나가는 것 같았다.
그러나 형무소는 보안에 의해 안전할 것이라는 망상에도 불구하고, 살기에 매우 위험한 장소였다. 1936년 1월 28일, 레브의 감방 동료 제임스 E.데이는 샤워실에서 접는 면도칼로 레브를 공격했다. 50군데 이상 찔린 자상에서 피가 쏟아져 나왔다. 일곱명의 의학박사와 외과의가 그를 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썼으나, 리처드 레브는 과다출혈로 인한 쇼크로 절명했다. 그의 나이 32살이었다. 후에, 그의 몸에 흐른 피는 그의 가장 내밀한 친우 리오폴드가 씻어냈다.
훗날 리오폴드는 자신의 책「삶 더하기 99년」에서, 자신의 감정을 이렇게 썼다.
『우리는 결국 시트로 그를 덮었다. 그러나 순간, 나는 그의 얼굴에서 시트를 치우고, 그가 눕혀진 수술대 옆에 의자를 놓고 앉았다. 마지막으로 그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이상한 소리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그는 나의 최고의 공범자였다.』
『어떤 감각에서는, 그는 내가 가지고 있었던 가장 거대한 적(敵)이었다. 그의 우애을 얻는 댓가로 나는ㅡ내 인생을 주었다. 범죄를 벌일 생각을 시작했던 사람은 그였고, 그것을 계획했던 사람도 주로 수행했던 사람도 그였다. 우리가 결국 했던 일(살인)을 하자고 주장했던 사람도 그였다... 딕은 살아있는 모순(矛盾)이었다.』
『내가 앉아있는 동안 그의 몸은 차가와지고, 피를 흘리며 생명이 사라져갔다. 그 모순(矛盾)의 생소함의 곁에 앉아있을 때ㅡ그의 근본적인 반대감정병존(反對感情竝存)이 내 안으로 덮쳐들었다.』
『나는, 딕이 가지고 있었던 다른 대부분의 이들보다도 정말로 뛰어난 부분들을 알고 있었다. 표면적인 사회적 덕목이 아닌.
그것들은 물론 그가 가진 N번째의 것일 뿐이었다. 인격에서 가장 기본적이고도 가장 중요한 부분에서, 그는 완벽한 우성(優性)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결점에 정직했고 극단적으로 충실했다; 그는 진실하고 사심없이 헌신할 수 있었다. 학교에 대한 그의 헌신이 그것을 증명한다. 그는 정말로, 진심으로 자신의 죄수동료들을 돕고 싶어했다.』
『이러한 인격적 특징이 어떻게 딕의 다른 면과 함께 공존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았다. 생각할 수도 없지 않은가. 그에게는 다른 부분도 함께 존재하고 있었다.
딕은 종래의 도덕적인 부분의 작고 희미한 자취마저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우리가 투옥(投獄)되기 전부터 그 이후까지도, 그리고 그가 죽는 그날까지도, 나는 그가 정말로 우리가 했던 일에 대해 후회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우리가 체포되었다는 점에 유감을 느낄 뿐..
그러나「살인」그 자체에 대해서는? 나는 정직하게 말하여 그렇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제임스 데이는 자신이 레브를 50회나 찌른 것은 그가 자신에게 동성애적 접근을 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레브의 인후(咽喉) 뒷쪽이 깊숙히 잘렸기 때문에 그런 주장은 거의 절대 근거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레브는 자신의 친구들에게 담배와 사탕을 살 돈을 나눠주곤 했는데, 데이의 몫과 관련하여 데이와 레브는 평상시 다툼이 잦았다. 레브의 가족들은 레브에게 달마다 50불을 넣어주고 있었고, 레브는 자신의 돈을 친구들에게 줄 과자와 담배를 사는데에 모두 썼다.
새로운 교도소장이 죄수들의 허가금액을 주에 3달러로 낮추자, 데이는 레브에게서 생각하는 것만큼 돈을 얻어낼 수 없는 것에 앙심을 품고 있었다.
데이는 물론, 레브를「자기방어」로 죽였다며 청원했으나, 정작 자신은 찰과상 조차 입지 않은 상태였다. 데이의 몸에 묻은 피는 모두 리처드의 것이었다.
그러나 진실과는 상관없이, 데이는 유죄판정을 받지 않았다.
당연한 것이지만, 리오폴드는 자신의 넘쳐나는 시간을 감옥 안에서 공부하는 것에 쏟아부었다. 그는 형무소에 가기 전에 배웠던 15개의 언어에 더해 12개의 국어를 더 마스터했다. 그는 수학과 더 많은 난해한 주제들을 공부했다. 형무소 학교와 도서관에서 일하는 것도 멈추지 않았고, 카나리아를 기르며 말라리아에 대한 연구를 자원했다.
언론과 동떨어진 기나긴 세월 이후, 그는 결국 언론과의 신중한 우호증진을 통하여 자신의 대중적 이미지를 회복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것은 순조로왔고, 1953년이 되자 가석방 심사가 열렸다.
주(州)정부 검사 존 거트넷은 의회에서 로비를 벌일 정도로 리오폴드의 가석방을 반대했다.
결과는, 리오폴드의 가석방 청구가 반려되는 것 뿐 아니라, 다음 12년 동안 가석방 위원회의 책상에 그의 안(case)이 올라오지 못하게 한다,라는 것으로 끝났다. 12년은 일리노이 역사상 가장 긴 가석방 반려기간이었다.
1958년 3월, 마침내, 33년간 수감되어 있던 리오폴드가 가석방으로 풀려났다.
그는 언론의 괴롭힘을 피해 푸에르토리코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그는「푸에르토리코의 조류(藻類)」라는 책을 출판하고, 푸에르토리코 국립대의 교수가 되었으며 여러가지 위치(과목)를 가르쳤다.
1961년, 리오폴드는 발티모어의 전직(前職) 사회복지사이자 푸에르토리코인(人) 의사의 미망인인 트루디 펠드먼 가르시아 데 퀘베다와 결혼했다.
10년 후인 1971년, 그는 아내의 옆에서 66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사인은 심장마비였다.
졸리엣 형무소 문 앞에서. 리오폴드(좌)와 레브(우)
# Marilyn Bardsley (C)
# Choi Young Sun (C)
#「LEOPOLD & LOEB」, 完.
※리오폴드와 레브 사건 관련도서목록
ㅡMeyer Levin「Compulsion」(Simon & Schuster,1956)
ㅡNathan F. Leopold Jr.「Life Plus 99 Years」(Doubleday,1958)
ㅡMaureen McKernan「The Amazing Crime and Trial of Leopold and Loeb」(New American Library, 1957)
ㅡHal Higdon「Very thorough Crime of the Century: The Leopold & Loeb Case」(G.P.Putnam's Sons,1975)
ㅡKevin Tierney「Darrow: A Biography」(Thomas Y. Crowell,1979)
(※한글로 번역된 것은 (제가 아는 한) 없습니다)
+talk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이 몇분이나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리오폴드와 레브 사건은 지금까지 제가 읽었던 범죄에 대한 기록과 책들 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사건 중 하나였습니다. 비단 '세기의 재판'이라고 불리워서만은 아닙니다.
예전에 리오폴드의 저서(「Life Plus 99 Years」)를 읽다가 조금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납니다.
감정적인 글이 아니었고, 굉장히 건조한 어조로 낮게 중얼거리는 듯한 글이었습니다.
천천히 생명이 빠져나가 식어가는 레브를 지켜보면서, 리오폴드가 초인(超人)이 되지 못한 진짜「결함」의 실체ㅡ진실로는 그것은 ≪육체적 결함≫이 아닌 ≪감정적 결함≫(강렬한 애정과 강렬한 증오만이 병존하는)이었으며, 그「결함」이 자신이 씻긴 레브의 시신에서 흐른 핏물과 함께 배수구의 구멍으로 빠져 나가고ㅡ '인간으로서' 리오폴드의 존재가 공기처럼 방울방울 터져 천천히 해체되어 가는 모습을 보아버린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인간이란, 과연 서로에게 있어서 어떤 존재일까요.
인간은 결코 동등하지도 동일하지도 평등하지도 않으며 그 사이에 성립된 관계조차 마찬가지다, 라는 것도 알고 있으나ㅡ
인간로서 태어나 느끼는 이 심연(深淵)한 관계(關係) 딜레마는
언제나 저를 울분하게 하고ㅡ언제나 저를 슬프게 만듭니다.
'자연에 살아있는 동안'으로 규정되었던 기간("99년(종신형)")은 레브와 함께 있도록 허락받은 기간이었고, 레브는 죽어'버렸'습니다. 이미 그의 죽음과 함께 인간으로서의 한번의 생을 땅에 묻은 리오폴드는 가석방되어 이후에 "보너스(plus)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답게' 학자가 되었고, 노쇠하였지만, 결혼도 했습니다.
젊은 나이에 죽은 것도, 그 죽음의 방식도 너무나 '다워'서 결말이 놀랍지도 않았던 레브의 경우ㅡ"인후(咽喉)"가 잘려서 죽은 것이 기묘했습니다. 바비 프랭크스는 "인후"가 막혀서 질식사 했었지요ㅡ차라리 그가 좀 더 살았다면 그 노쇠하는 모습을 보며 ≪완전한 인간≫에 대한 리오폴드의 열망(환상)이 끝나게 되었을텐데, 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인간은 결국, 인간의 몸을 빌어서 태어난 이상 결코 ≪완전할 수가 없는 존재≫니까요.
판결의 충격은 대단히 맹렬했다. 사건에 관련된 누구도 똑같은 여파를 겪지 않았다.
캐벌리 판관과 그의 아내는 재판의 막대한 긴장과 피로로 인해 신속히 병원에 입원하여 건강상태를 점검했다. 그는 재판장석으로 돌아온 후 이혼사건만 맡았다. "나는 건강을 잃었다." 그는 기자들에게 말했다.
제이콥 프랭크스는 자신의 막내 아들을 잃은 슬픔에서 회복되지 못한 채 몇년 후 사망하였다. 아들의 죽음 후 그리고 공판기간 동안 망상(妄想)증세를 겪던 엄마 플로러는 결국 그녀의 이지(理智)를 되찾았다. 그녀는 남편의 죽음 후 재혼했다.
아들의 범죄 전에 심한 심장마비를 겪어 쇠약해진 앨버트 레브는 재판 도중 자신의 고향도시인 샤를부아(*역주:캐나다 퀘벡의 소도시)의 사유지로 이사하여 살다가, 아들의 판결이 끝난 몇달 후 사망하였다. 아들이 5월에 체포된 이후, 그는 자신의 아들을 결코 만나지 않았다.
네이선 리오폴드의 아버지는 1929년 심부전증으로 사망하였다. 수치와 슬픔은 그를 켄우드의 집에서 떠나게 했다. 그의 두명의 아들들은 자신의 성(姓)을 바꾸었고, 불명예스러운 가족의 치욕을 지웠다.
클래런스 대로우는 또다시 하나의 대형 사건을 맡았다: 교육 문제에 관련되어 테네시의 한 교사를 변호하기 위해 스콥스 사건, 이른바「진화론 재판(The Monkey Trial)」(*)으로 역사에 남은 재판을 맡았다. "구변좋은" 웅변가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이 그의 상대자였다.
(*역주:미국에서는 1925년까지 진화론에 관한 교육을 금지하고 있었다. 테네시주(州)에서는 종교적 법안인 '버틀러법'을 제정하기도 했다. 이에 최초로 반기를 들고 나온 열렬한 다위니스트 조지 래플리는 이 '혐오'법안을 철폐시킬 것을 주장했고, 그의 설득 끝에 선두에 나서게 된 학교교사가 존 스콥스였으며 변호사는 형사변호로 명성(악명)높은 클래런스 대로우였다. 상대측 변호사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은 격렬한 기독교 근본주의자(창조론자)였다. '종교 대(對) 학문'의 대결구도로 번진 이 재판은 결국 진화론의 패소로 끝났다.)
처음에, 형무소 관리는 리오폴드와 레브를 따로 떨어뜨려 놓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끝까지 함께 있었다. 그들의 인생은 과감하게 변해버렸다. 1년후 기자가 그들을 만나러 갔을 때, 리오폴드는 인터뷰를 거절했다. 레브는 크게 바뀌었다. "나는 당신과 말할 수 없다. 무언가 말하고 싶지만, 미움받는 것이 두렵다."
1932년, 두사람은 죄수들을 위한 학교를 열었다. 다른 교육받은 수용자들과 함께, 리오폴드와 레브는 관리업무를 맡았고 학급을 가르쳤다. 두 사람은 갱생의 징후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들의 삶, 그들의 지적인 재능과 그들의 값비싼 교훈으로 인해, 그들의 인생이 진정으로 건설적인 방향으로 나가는 것 같았다.
그러나 형무소는 보안에 의해 안전할 것이라는 망상에도 불구하고, 살기에 매우 위험한 장소였다. 1936년 1월 28일, 레브의 감방 동료 제임스 E.데이는 샤워실에서 접는 면도칼로 레브를 공격했다. 50군데 이상 찔린 자상에서 피가 쏟아져 나왔다. 일곱명의 의학박사와 외과의가 그를 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썼으나, 리처드 레브는 과다출혈로 인한 쇼크로 절명했다. 그의 나이 32살이었다. 후에, 그의 몸에 흐른 피는 그의 가장 내밀한 친우 리오폴드가 씻어냈다.
훗날 리오폴드는 자신의 책「삶 더하기 99년」에서, 자신의 감정을 이렇게 썼다.
『우리는 결국 시트로 그를 덮었다. 그러나 순간, 나는 그의 얼굴에서 시트를 치우고, 그가 눕혀진 수술대 옆에 의자를 놓고 앉았다. 마지막으로 그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이상한 소리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그는 나의 최고의 공범자였다.』
『어떤 감각에서는, 그는 내가 가지고 있었던 가장 거대한 적(敵)이었다. 그의 우애을 얻는 댓가로 나는ㅡ내 인생을 주었다. 범죄를 벌일 생각을 시작했던 사람은 그였고, 그것을 계획했던 사람도 주로 수행했던 사람도 그였다. 우리가 결국 했던 일(살인)을 하자고 주장했던 사람도 그였다... 딕은 살아있는 모순(矛盾)이었다.』
『내가 앉아있는 동안 그의 몸은 차가와지고, 피를 흘리며 생명이 사라져갔다. 그 모순(矛盾)의 생소함의 곁에 앉아있을 때ㅡ그의 근본적인 반대감정병존(反對感情竝存)이 내 안으로 덮쳐들었다.』
『나는, 딕이 가지고 있었던 다른 대부분의 이들보다도 정말로 뛰어난 부분들을 알고 있었다. 표면적인 사회적 덕목이 아닌.
그것들은 물론 그가 가진 N번째의 것일 뿐이었다. 인격에서 가장 기본적이고도 가장 중요한 부분에서, 그는 완벽한 우성(優性)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결점에 정직했고 극단적으로 충실했다; 그는 진실하고 사심없이 헌신할 수 있었다. 학교에 대한 그의 헌신이 그것을 증명한다. 그는 정말로, 진심으로 자신의 죄수동료들을 돕고 싶어했다.』
『이러한 인격적 특징이 어떻게 딕의 다른 면과 함께 공존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았다. 생각할 수도 없지 않은가. 그에게는 다른 부분도 함께 존재하고 있었다.
딕은 종래의 도덕적인 부분의 작고 희미한 자취마저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우리가 투옥(投獄)되기 전부터 그 이후까지도, 그리고 그가 죽는 그날까지도, 나는 그가 정말로 우리가 했던 일에 대해 후회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우리가 체포되었다는 점에 유감을 느낄 뿐..
그러나「살인」그 자체에 대해서는? 나는 정직하게 말하여 그렇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제임스 데이는 자신이 레브를 50회나 찌른 것은 그가 자신에게 동성애적 접근을 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레브의 인후(咽喉) 뒷쪽이 깊숙히 잘렸기 때문에 그런 주장은 거의 절대 근거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레브는 자신의 친구들에게 담배와 사탕을 살 돈을 나눠주곤 했는데, 데이의 몫과 관련하여 데이와 레브는 평상시 다툼이 잦았다. 레브의 가족들은 레브에게 달마다 50불을 넣어주고 있었고, 레브는 자신의 돈을 친구들에게 줄 과자와 담배를 사는데에 모두 썼다.
새로운 교도소장이 죄수들의 허가금액을 주에 3달러로 낮추자, 데이는 레브에게서 생각하는 것만큼 돈을 얻어낼 수 없는 것에 앙심을 품고 있었다.
데이는 물론, 레브를「자기방어」로 죽였다며 청원했으나, 정작 자신은 찰과상 조차 입지 않은 상태였다. 데이의 몸에 묻은 피는 모두 리처드의 것이었다.
그러나 진실과는 상관없이, 데이는 유죄판정을 받지 않았다.
당연한 것이지만, 리오폴드는 자신의 넘쳐나는 시간을 감옥 안에서 공부하는 것에 쏟아부었다. 그는 형무소에 가기 전에 배웠던 15개의 언어에 더해 12개의 국어를 더 마스터했다. 그는 수학과 더 많은 난해한 주제들을 공부했다. 형무소 학교와 도서관에서 일하는 것도 멈추지 않았고, 카나리아를 기르며 말라리아에 대한 연구를 자원했다.
언론과 동떨어진 기나긴 세월 이후, 그는 결국 언론과의 신중한 우호증진을 통하여 자신의 대중적 이미지를 회복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것은 순조로왔고, 1953년이 되자 가석방 심사가 열렸다.
주(州)정부 검사 존 거트넷은 의회에서 로비를 벌일 정도로 리오폴드의 가석방을 반대했다.
결과는, 리오폴드의 가석방 청구가 반려되는 것 뿐 아니라, 다음 12년 동안 가석방 위원회의 책상에 그의 안(case)이 올라오지 못하게 한다,라는 것으로 끝났다. 12년은 일리노이 역사상 가장 긴 가석방 반려기간이었다.
1958년 3월, 마침내, 33년간 수감되어 있던 리오폴드가 가석방으로 풀려났다.
그는 언론의 괴롭힘을 피해 푸에르토리코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그는「푸에르토리코의 조류(藻類)」라는 책을 출판하고, 푸에르토리코 국립대의 교수가 되었으며 여러가지 위치(과목)를 가르쳤다.
1961년, 리오폴드는 발티모어의 전직(前職) 사회복지사이자 푸에르토리코인(人) 의사의 미망인인 트루디 펠드먼 가르시아 데 퀘베다와 결혼했다.
10년 후인 1971년, 그는 아내의 옆에서 66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사인은 심장마비였다.
# Marilyn Bardsley (C)
# Choi Young Sun (C)
#「LEOPOLD & LOEB」, 完.
※리오폴드와 레브 사건 관련도서목록
ㅡMeyer Levin「Compulsion」(Simon & Schuster,1956)
ㅡNathan F. Leopold Jr.「Life Plus 99 Years」(Doubleday,1958)
ㅡMaureen McKernan「The Amazing Crime and Trial of Leopold and Loeb」(New American Library, 1957)
ㅡHal Higdon「Very thorough Crime of the Century: The Leopold & Loeb Case」(G.P.Putnam's Sons,1975)
ㅡKevin Tierney「Darrow: A Biography」(Thomas Y. Crowell,1979)
(※한글로 번역된 것은 (제가 아는 한) 없습니다)
+talk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이 몇분이나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리오폴드와 레브 사건은 지금까지 제가 읽었던 범죄에 대한 기록과 책들 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사건 중 하나였습니다. 비단 '세기의 재판'이라고 불리워서만은 아닙니다.
예전에 리오폴드의 저서(「Life Plus 99 Years」)를 읽다가 조금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납니다.
감정적인 글이 아니었고, 굉장히 건조한 어조로 낮게 중얼거리는 듯한 글이었습니다.
천천히 생명이 빠져나가 식어가는 레브를 지켜보면서, 리오폴드가 초인(超人)이 되지 못한 진짜「결함」의 실체ㅡ진실로는 그것은 ≪육체적 결함≫이 아닌 ≪감정적 결함≫(강렬한 애정과 강렬한 증오만이 병존하는)이었으며, 그「결함」이 자신이 씻긴 레브의 시신에서 흐른 핏물과 함께 배수구의 구멍으로 빠져 나가고ㅡ '인간으로서' 리오폴드의 존재가 공기처럼 방울방울 터져 천천히 해체되어 가는 모습을 보아버린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인간이란, 과연 서로에게 있어서 어떤 존재일까요.
인간은 결코 동등하지도 동일하지도 평등하지도 않으며 그 사이에 성립된 관계조차 마찬가지다, 라는 것도 알고 있으나ㅡ
인간로서 태어나 느끼는 이 심연(深淵)한 관계(關係) 딜레마는
언제나 저를 울분하게 하고ㅡ언제나 저를 슬프게 만듭니다.
'자연에 살아있는 동안'으로 규정되었던 기간("99년(종신형)")은 레브와 함께 있도록 허락받은 기간이었고, 레브는 죽어'버렸'습니다. 이미 그의 죽음과 함께 인간으로서의 한번의 생을 땅에 묻은 리오폴드는 가석방되어 이후에 "보너스(plus)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답게' 학자가 되었고, 노쇠하였지만, 결혼도 했습니다.
젊은 나이에 죽은 것도, 그 죽음의 방식도 너무나 '다워'서 결말이 놀랍지도 않았던 레브의 경우ㅡ"인후(咽喉)"가 잘려서 죽은 것이 기묘했습니다. 바비 프랭크스는 "인후"가 막혀서 질식사 했었지요ㅡ차라리 그가 좀 더 살았다면 그 노쇠하는 모습을 보며 ≪완전한 인간≫에 대한 리오폴드의 열망(환상)이 끝나게 되었을텐데, 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인간은 결국, 인간의 몸을 빌어서 태어난 이상 결코 ≪완전할 수가 없는 존재≫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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