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The Leopold & Loeb Case (完)

7.그 후

판결의 충격은 대단히 맹렬했다. 사건에 관련된 누구도 똑같은 여파를 겪지 않았다.

캐벌리 판관과 그의 아내는 재판의 막대한 긴장과 피로로 인해 신속히 병원에 입원하여 건강상태를 점검했다. 그는 재판장석으로 돌아온 후 이혼사건만 맡았다. "나는 건강을 잃었다." 그는 기자들에게 말했다.

제이콥 프랭크스는 자신의 막내 아들을 잃은 슬픔에서 회복되지 못한 채 몇년 후 사망하였다. 아들의 죽음 후 그리고 공판기간 동안 망상(妄想)증세를 겪던 엄마 플로러는 결국 그녀의 이지(理智)를 되찾았다. 그녀는 남편의 죽음 후 재혼했다.

아들의 범죄 전에 심한 심장마비를 겪어 쇠약해진 앨버트 레브는 재판 도중 자신의 고향도시인 샤를부아(*역주:캐나다 퀘벡의 소도시)의 사유지로 이사하여 살다가, 아들의 판결이 끝난 몇달 후 사망하였다. 아들이 5월에 체포된 이후, 그는 자신의 아들을 결코 만나지 않았다.

네이선 리오폴드의 아버지는 1929년 심부전증으로 사망하였다. 수치와 슬픔은 그를 켄우드의 집에서 떠나게 했다. 그의 두명의 아들들은 자신의 성(姓)을 바꾸었고, 불명예스러운 가족의 치욕을 지웠다.

클래런스 대로우는 또다시 하나의 대형 사건을 맡았다: 교육 문제에 관련되어 테네시의 한 교사를 변호하기 위해 스콥스 사건, 이른바「진화론 재판(The Monkey Trial)」(*)으로 역사에 남은 재판을 맡았다. "구변좋은" 웅변가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이 그의 상대자였다.
(*역주:미국에서는 1925년까지 진화론에 관한 교육을 금지하고 있었다. 테네시주(州)에서는 종교적 법안인 '버틀러법'을 제정하기도 했다. 이에 최초로 반기를 들고 나온 열렬한 다위니스트 조지 래플리는 이 '혐오'법안을 철폐시킬 것을 주장했고, 그의 설득 끝에 선두에 나서게 된 학교교사가 존 스콥스였으며 변호사는 형사변호로 명성(악명)높은 클래런스 대로우였다. 상대측 변호사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은 격렬한 기독교 근본주의자(창조론자)였다. '종교 대(對) 학문'의 대결구도로 번진 이 재판은 결국 진화론의 패소로 끝났다.)

처음에, 형무소 관리는 리오폴드와 레브를 따로 떨어뜨려 놓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끝까지 함께 있었다. 그들의 인생은 과감하게 변해버렸다. 1년후 기자가 그들을 만나러 갔을 때, 리오폴드는 인터뷰를 거절했다. 레브는 크게 바뀌었다. "나는 당신과 말할 수 없다. 무언가 말하고 싶지만, 미움받는 것이 두렵다."

1932년, 두사람은 죄수들을 위한 학교를 열었다. 다른 교육받은 수용자들과 함께, 리오폴드와 레브는 관리업무를 맡았고 학급을 가르쳤다. 두 사람은 갱생의 징후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들의 삶, 그들의 지적인 재능과 그들의 값비싼 교훈으로 인해, 그들의 인생이 진정으로 건설적인 방향으로 나가는 것 같았다.

그러나 형무소는 보안에 의해 안전할 것이라는 망상에도 불구하고, 살기에 매우 위험한 장소였다. 1936년 1월 28일, 레브의 감방 동료 제임스 E.데이는 샤워실에서 접는 면도칼로 레브를 공격했다. 50군데 이상 찔린 자상에서 피가 쏟아져 나왔다. 일곱명의 의학박사와 외과의가 그를 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썼으나, 리처드 레브는 과다출혈로 인한 쇼크로 절명했다. 그의 나이 32살이었다. 후에, 그의 몸에 흐른 피는 그의 가장 내밀한 친우 리오폴드가 씻어냈다.

훗날 리오폴드는 자신의 책「삶 더하기 99년」에서, 자신의 감정을 이렇게 썼다.

『우리는 결국 시트로 그를 덮었다. 그러나 순간, 나는 그의 얼굴에서 시트를 치우고, 그가 눕혀진 수술대 옆에 의자를 놓고 앉았다. 마지막으로 그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이상한 소리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그는 나의 최고의 공범자였다.』

『어떤 감각에서는, 그는 내가 가지고 있었던 가장 거대한 적(敵)이었다. 그의 우애을 얻는 댓가로 나는ㅡ내 인생을 주었다. 범죄를 벌일 생각을 시작했던 사람은 그였고, 그것을 계획했던 사람도 주로 수행했던 사람도 그였다. 우리가 결국 했던 일(살인)을 하자고 주장했던 사람도 그였다... 딕은 살아있는 모순(矛盾)이었다.』

『내가 앉아있는 동안 그의 몸은 차가와지고, 피를 흘리며 생명이 사라져갔다. 그 모순(矛盾)의 생소함의 곁에 앉아있을 때ㅡ그의 근본적인 반대감정병존(反對感情竝存)이 내 안으로 덮쳐들었다.』

『나는, 딕이 가지고 있었던 다른 대부분의 이들보다도 정말로 뛰어난 부분들을 알고 있었다. 표면적인 사회적 덕목이 아닌.
그것들은 물론 그가 가진 N번째의 것일 뿐이었다. 인격에서 가장 기본적이고도 가장 중요한 부분에서, 그는 완벽한 우성(優性)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결점에 정직했고 극단적으로 충실했다; 그는 진실하고 사심없이 헌신할 수 있었다. 학교에 대한 그의 헌신이 그것을 증명한다. 그는 정말로, 진심으로 자신의 죄수동료들을 돕고 싶어했다.』

『이러한 인격적 특징이 어떻게 딕의 다른 면과 함께 공존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았다. 생각할 수도 없지 않은가. 그에게는 다른 부분도 함께 존재하고 있었다.
딕은 종래의 도덕적인 부분의 작고 희미한 자취마저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우리가 투옥(投獄)되기 전부터 그 이후까지도, 그리고 그가 죽는 그날까지도, 나는 그가 정말로 우리가 했던 일에 대해 후회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우리가 체포되었다는 점에 유감을 느낄 뿐..
그러나「살인」그 자체에 대해서는? 나는 정직하게 말하여 그렇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제임스 데이는 자신이 레브를 50회나 찌른 것은 그가 자신에게 동성애적 접근을 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레브의 인후(咽喉) 뒷쪽이 깊숙히 잘렸기 때문에 그런 주장은 거의 절대 근거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레브는 자신의 친구들에게 담배와 사탕을 살 돈을 나눠주곤 했는데, 데이의 몫과 관련하여 데이와 레브는 평상시 다툼이 잦았다. 레브의 가족들은 레브에게 달마다 50불을 넣어주고 있었고, 레브는 자신의 돈을 친구들에게 줄 과자와 담배를 사는데에 모두 썼다.
새로운 교도소장이 죄수들의 허가금액을 주에 3달러로 낮추자, 데이는 레브에게서 생각하는 것만큼 돈을 얻어낼 수 없는 것에 앙심을 품고 있었다.

데이는 물론, 레브를「자기방어」로 죽였다며 청원했으나, 정작 자신은 찰과상 조차 입지 않은 상태였다. 데이의 몸에 묻은 피는 모두 리처드의 것이었다.
그러나 진실과는 상관없이, 데이는 유죄판정을 받지 않았다.

당연한 것이지만, 리오폴드는 자신의 넘쳐나는 시간을 감옥 안에서 공부하는 것에 쏟아부었다. 그는 형무소에 가기 전에 배웠던 15개의 언어에 더해 12개의 국어를 더 마스터했다. 그는 수학과 더 많은 난해한 주제들을 공부했다. 형무소 학교와 도서관에서 일하는 것도 멈추지 않았고, 카나리아를 기르며 말라리아에 대한 연구를 자원했다.

언론과 동떨어진 기나긴 세월 이후, 그는 결국 언론과의 신중한 우호증진을 통하여 자신의 대중적 이미지를 회복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것은 순조로왔고, 1953년이 되자 가석방 심사가 열렸다.
주(州)정부 검사 존 거트넷은 의회에서 로비를 벌일 정도로 리오폴드의 가석방을 반대했다.

결과는, 리오폴드의 가석방 청구가 반려되는 것 뿐 아니라, 다음 12년 동안 가석방 위원회의 책상에 그의 안(case)이 올라오지 못하게 한다,라는 것으로 끝났다. 12년은 일리노이 역사상 가장 긴 가석방 반려기간이었다.

1958년 3월, 마침내, 33년간 수감되어 있던 리오폴드가 가석방으로 풀려났다.
그는 언론의 괴롭힘을 피해 푸에르토리코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그는「푸에르토리코의 조류(藻類)」라는 책을 출판하고, 푸에르토리코 국립대의 교수가 되었으며 여러가지 위치(과목)를 가르쳤다.

1961년, 리오폴드는 발티모어의 전직(前職) 사회복지사이자 푸에르토리코인(人) 의사의 미망인인 트루디 펠드먼 가르시아 데 퀘베다와 결혼했다.

10년 후인 1971년, 그는 아내의 옆에서 66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사인은 심장마비였다.

졸리엣 형무소 문 앞에서. 리오폴드(좌)와 레브(우)


#  Marilyn Bardsley (C)
#  Choi Young Sun (C)
#「LEOPOLD & LOEB」, 完.



※리오폴드와 레브 사건 관련도서목록
ㅡMeyer Levin「Compulsion」(Simon & Schuster,1956)
ㅡNathan F. Leopold Jr.「Life Plus 99 Years」(Doubleday,1958)
ㅡMaureen McKernan「The Amazing Crime and Trial of Leopold and Loeb」(New American Library, 1957)
ㅡHal Higdon「Very thorough Crime of the Century: The Leopold & Loeb Case」(G.P.Putnam's Sons,1975)
ㅡKevin Tierney「Darrow: A Biography」(Thomas Y. Crowell,1979)
(※한글로 번역된 것은 (제가 아는 한) 없습니다)





+talk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이 몇분이나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리오폴드와 레브 사건은 지금까지 제가 읽었던 범죄에 대한 기록과 책들 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사건 중 하나였습니다. 비단 '세기의 재판'이라고 불리워서만은 아닙니다.

예전에 리오폴드의 저서(「Life Plus 99 Years」)를 읽다가 조금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납니다.
감정적인 글이 아니었고, 굉장히 건조한 어조로 낮게 중얼거리는 듯한 글이었습니다.
천천히 생명이 빠져나가 식어가는 레브를 지켜보면서, 리오폴드가 초인(超人)이 되지 못한 진짜「결함」의 실체ㅡ진실로는 그것은 ≪육체적 결함≫이 아닌 ≪감정적 결함≫(강렬한 애정과 강렬한 증오만이 병존하는)이었으며, 그「결함」이 자신이 씻긴 레브의 시신에서 흐른 핏물과 함께 배수구의 구멍으로 빠져 나가고ㅡ '인간으로서' 리오폴드의 존재가 공기처럼 방울방울 터져 천천히 해체되어 가는 모습을 보아버린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인간이란, 과연 서로에게 있어서 어떤 존재일까요.
인간은 결코 동등하지도 동일하지도 평등하지도 않으며 그 사이에 성립된 관계조차 마찬가지다, 라는 것도 알고 있으나ㅡ
인간로서 태어나 느끼는 이 심연(深淵)한 관계(關係) 딜레마는
언제나 저를 울분하게 하고ㅡ언제나 저를 슬프게 만듭니다.

'자연에 살아있는 동안'으로 규정되었던 기간("99년(종신형)")은 레브와 함께 있도록 허락받은 기간이었고, 레브는 죽어'버렸'습니다. 이미 그의 죽음과 함께 인간으로서의 한번의 생을 땅에 묻은 리오폴드는 가석방되어 이후에 "보너스(plus)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답게' 학자가 되었고, 노쇠하였지만, 결혼도 했습니다.

젊은 나이에 죽은 것도, 그 죽음의 방식도 너무나 '다워'서 결말이 놀랍지도 않았던 레브의 경우ㅡ"인후(咽喉)"가 잘려서 죽은 것이 기묘했습니다. 바비 프랭크스는 "인후"가 막혀서 질식사 했었지요ㅡ차라리 그가 좀 더 살았다면 그 노쇠하는 모습을 보며 ≪완전한 인간≫에 대한 리오폴드의 열망(환상)이 끝나게 되었을텐데, 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인간은 결국, 인간의 몸을 빌어서 태어난 이상 결코 ≪완전할 수가 없는 존재≫니까요.
TAG 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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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The Leopold & Loeb Case (6)

6.판결

재판의 정점은 1924년 8월 24일 클래런스 대로우의 변론이었다. 이것은 2시간에 걸쳐 계속 되었고, 그의 기나긴 경력 중 가장 훌륭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 발언의 초반부, 그는 이부분을 강조했다.

"시카고 법정에서는 21세 이하의 청소년이 유죄를 인정했던 경우 사형판결의 전례가 없었다. 나는 이 연령을 끌어올려, 이렇게 말할 것이다. 23세 이하의 인간이 사형판결을 받았던 경우는 없다, 라고... 이 나라의 변호사가 이전에 결코 요구한 적이 없었던 것을 요구해야할 필요성이 있다.

"지난 10년간, 시카고시(市)에서 살인혐의로 피소(被訴)된 사람은 450여명에 달하며 그들이 유죄판결을 받았다는 것을 알고있다. 그리고 그들 중 단 한 명만이 교수형을 당했다. 이 사건을 맡은 검사는 나의 친구였고, 그는 검찰측에 서서 교수형 언도을 받아냈다. 그러나 그의 "희생자(피고)"는 40살이었다."

후에, 대로우는 검찰측에서 꾸준히 사용하던 "냉혈살인"이라는 표현에 대하여 이견을 재기했다. 대로우는 이러한 수사학적(修辭學的) 관점을 펼쳤다: "검찰측은 '인간의 생명을 빼앗고자 했기 때문에'「냉혈살인」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번 사건이 이 나라에서 발생했던 '가장 냉혈한 살인'이라고 말한다. 나는 검사측에서「지금까지 있었던 사건 중 변명의 여지도 없이 가장 계획적이고 가장 냉혈한 살인」이라고 말하지 않는 사건을 지금까지 한번도 본 적이 없다.ㅡ「살인」사건이 발생한다면 살인 그 자체보다 '가장 더한' 어떤 것은 없다. 법률가들은 곧잘 그렇게 말하곤 하지만."

그는 이번 사건이 정말로 일리노이주(州)에서 발생했던 가장 냉혈하고도 잔혹한 살인이었는지 아니었는지에 촛점을 맞추었다: "가장 공정한 잣대로 재어보아도, 이번 사건이 내가 알고 있는 것들 중 적지않게 비열하고 잔인했다고 말하겠다. 그나마 고통을 적었을 가련하고 어린 바비 프랭크스... 그가 차에 오르고 나서 15분동안 모든 것이 끝났고, 그는 아마 깨닫지도 못했을 것이다. 부당했지만.. 결국 끝나 버렸다"

"이것은 두소년들의 무의식적이고 소용없고 무의미하며 동기조차 없는 행동이었다. 어떠한 증오의 입자도 없었다. 조금의 악의도 없었다. 그러한 잔인해질 어떤 기회조차 없었던 것이다. 그러한 죽음이 잔인했다는 것을 제외한다면.ㅡ 죽음은 잔인하다"

대로우는 이 두소년이 몸값 5천 달러를 갖고 싶어서 살인을 범했다는 크로우 검사의 어리석은 범죄 동기부여 부분을 각하시켰다. 레브는 살인이 있던 시점 그의 당좌구좌에 3천불의 예금을 가지고 있었고, 그의 부친은 언제든 그가 원할 때면 돈을 주었다. 리오폴드의 아버지는 아들의 유럽여행 비용으로 3천불 가까이 주기로 했었다. 크로우는 두 소년들이 브릿지(*역주:카드게임의 일종)를 하다가 거대한 도박빚이 생겼다고 언급했었는데, 이 '거대한 도박빚'은 둘 중 한 명이 다른 한 명에게 90불을 줘야한다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변변찮은 얘기다. 이것은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문제다. 그리고 우리는 그 이상 것ㅡ 두 가문의 장래를 다루는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그것은 두 가문의 명예에 불필요한 오명을 씌우는 행위다. 그리고 이 나라의 누구나 브릿지 게임이라는 것을 하다가 한 사람이 다른 한 명에게 90불을 잃으면 뛰어나가서 살인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하는 얘기인 것이다."

그는 두소년들의 기괴한 정신상태와 그들의 우정이 낳은 비극적 결과를 요약했다.

"그들은 기묘하고 거의 불가능한 관계를 성립하고 있다. 초인(超人)에 대한 강박적인 집착에 사로잡힌 리오폴드는 레브가 자신의 초인(超人)이라고 끊임없이 반복하여 말하고 있다. 리오폴드는 가장 헌신적인 친구나 혹은 남자가 자신의 연인을 향해 보이는 것과 같은 태도를 보이고 있다. ㅡ두 사람의 조합이 아니었다면, 이러한 유의 사건은 아마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정신의들의 모든 증언은 이 끔찍한 범행은 미숙하고 정신병적인 행위이며 어린아이의 행위였다고 말하고 있다.

"누구도 이것을 다른 그 어떤 방식으로도 설명할 수 없다.

"누구도 이것을 다른 그 어떤 방식으로도 상상할 수가 없다.

"다른 그 어떤 방식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는 드라마틱한 청원으로, 소년들의 생명을 청원하는 계산서 작성을 끝냈다.

"나는 이 두 소년을 구출(무죄판결)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나는 그들의 면전에서 '기대하라'는 유의 말을 하고 싶지 않다. 나는 존경하는 재판장께서 그들의 목에 줄을 감아 죽도록 만드는 것이 자비롭지 못한 행위라고 생각지 않는다. 소년들에게 있어서는 그것이 자비가 될 것이다. ㅡ그러나 문명(文明)에 있어서는 자비가 아니며, 남아있는 이들에게도 자비가 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을 감옥에 수감시켜 그들의 삶의 밸런스를 찾도록 해주는 것을 좀 더 기대하고 있다, 가능하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제 끝났으며.. 여기에 하우스먼(*역주:영국의 라틴학자 겸 시인)의 싯귀를 붙이겠다:

『공허한 불이 검게 타버린 지금
   빛은 약하게 펄럭인다:
   어깨에 힘을 주어 네 짐을 등에 지고
   친구를 놓아주어 가게 해주어라
   두려워하지 마라, 젊은이, 공포는 없다
   네가 걷고 있는 이 끝이 보이지 않는 길에서
   주위를 두리번 거리지 마라
   그곳엔 오직 어둠 뿐이다』
  (*역주:A.E.하우스먼(A.E.Housman.1857~1935)의 첫 시집「슈롭셔 청년(A Shropshire Lad)」중 제60편 전문(全文). 과작(寡作)인 하우스먼의 극히 단아한 문체로 쓰여진 이 서정시집은 청년애(동성애)를 은유하고 있다)

"존경하는 재판장이여, 나는 이 행진이 교수형의 시작이 될지 아니면, 자비롭게도 남은 것이 오직 어둠(night)뿐인 이들의 앞에 졸리엣(*역주:일리노이 주(州)형무소)의 문이 닫힌 채 끝날 지 생각하지 않고 있다.

"우리 중 누구도 대중(大衆)에게 무관심할 수 없다; 법정도, 배심원단도 마찬가지이다. 우리의 숙명이, 배심원보다 더 주의깊고 사려깊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이 엄정한 재판장의 손 안에서 결정된다. 나는 일반인들이 어떻게 느낄지 말할 수가 없다. 나는 마치 대양(大洋) 앞에 서서 파도를 밀어내려는 인간처럼, 이 자리에 석달 동안 서있었다. 나는 이 파고(波高)가 가라앉길, 바람이 잦아들길 바란다. 그것들이 본 법정에 잘못된 판단구실을 주지 않게 될 거라고 믿고 있다.

"손쉬운 일, 그리고 인기가 되는 일은 나의 의뢰인을 교수형에 처하는 일일 것이다. 나도 안다. 생각지 않고 사람들은 박수갈채를 보낼 것이다. 잔혹하고 경솔하게 찬동하게 될 것이다. 이 시카고에서는, 마음편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이땅의 숨결이 닿는 모든 곳과, 더 많은 이 땅의 아버지와 어머니들, 인도주의, 동정심이 존재한다. 비단 자신의 자녀들뿐 아니라 이 바람직하지 못한 소년들에 대한 이해(理解)와 의문을 갖게 되는 것이다.ㅡ이러한 것들이 나의 외뢰인의 죽음에 어떠한 환호성에도 동감하여 참여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인간으로서의 보편적인 감정으로 되돌아와서, 더이상의 피를 흘리는 것을 멈출 것을 요구할 것이다. 그 요구는 날이 지나고 달이 지나고 해가 지날수록 거세어 질 것이다.

"그러나, 존경하는 재판장이여, 그들은 (재판의 결과에 대해) 누군가의 책임을 물으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여기 쉬운 길이 있다. 나는 재판장께서 미래와 과거 그 기로에 서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미래가 내쪽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래서 지금 이곳에 서 있다; 단지 이 두 불운한 청년들의 목숨 뿐 아니라, 모든 소년소녀들, 모든 청년들, 가능하다면 모든 노인들을 위해서 이곳에 서있다ㅡ나는 삶, 이해, 자선, 친절과 고려할 수 있는 모든 무한의 자비를 위해 변호하고 있다. 나는 우리가 애정으로서 잔학함을, 사랑으로서 증오심을 압도할 수 있다고 변호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미래가, 내쪽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내가 소요한 시간이 길었음을 사과하고 싶다. 이번 사건은 어쩌면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중요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본 법정, 혹은 나의 친구들에게 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부유한 자를 위해 싸우는 것이나 가난한 자를 위해 싸우는 것이나 어렵긴 마찬가지다.
만일 내가 이 소년들의 생명을 구하는데에는 성공하고 법의 진보를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나는 정말로 슬픔을 느끼게 될 것같다. 내가 성공한다면, 나의 가장 거대한 보수이자 나의 거대한 희망대로 수만명의 다른 소년들과, 이 소년들이 그랬던 것처럼 눈먼 유년기를 보낸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불운한 사람을 위한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의 이해와, 자비로 정의를 감싸 사랑으로 증오를 압도하는 무언가를."

소추(訴追)는 이틀 후에 끝났다.

리오폴드(좌)와 레브(우). 판정을 기다리는 중

1924년 9월 19일 수요일, 캐벌리 판사는 그의 판결을 내렸다.
그는 이 사건이 두 소년의 광기(狂氣)에 의해 자행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그들은 본질적으로 비정상적인 것들을 동경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범죄를 감행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언급했다.

그는 정신의들의 상세한 보고서를 범죄학 상 가치있는 공헌이 될 것이라고 인정했다.

"본 사건의 (정신의들의) 증언은 둘도없이 극악한 범죄를 밝혀내고 있다. 이것은 어느 의미로는 불가해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인해서 더 비인간적인 기분이 되거나 더 불쾌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캐벌리는 최종판결 전에, 살인과 유괴에 대해 가능한 처벌을 요약했다.

"법이 허락하는 한 극형을 내리는 것이, 최소한의 저항이 될 것이다. 사형 대신 투옥(投獄)이 두 피고의 연령을 가장 크게 고려한 본 법정의 선택이다.
지금 이 순간, 일반인의 생각은 강력하게 교수형을 내리는 것이 종신형(終身刑)쪽 보다도 더 이해가 쉬울 것이다.
그러나 범죄자들, 특히 피고들과 같은 타입에 있어서, 수십년간의 제한된 시간을 겪게 하는 것이 좀 더 엄중한 응보와 속죄가 될 것이다."

캐벌리는 공공의 행복을 위해 두 피고에게 있어 결코 가석방(假釋放)이 인정되지 않도록 권유했다.

"살인혐의에 대하여, 그들을 일평생 동안 졸리엣 형무소에 투옥할 것을 판결한다."

"몸값을 목적으로한 유괴의 혐의에 대하여, 99년 간에 유사한 투옥을 판결한다."

재판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즈음에, 제이콥 프랭크스는 이미 교수형에 대한 자신들의 패배를 예고했었다: "내 아내와 나는 결코 네이선 주니어와 리처드가 교수형에 처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레브(좌)와 리오폴드(우). 졸리엣 형무소로의 이송 장면

 



최종회로 계속.



+talk
새벽 2시 귀가. 씻자마자 앉아서 마구 쳐대고 있습니다. (다시 읽기가 무섭다;)
뭔가 주석이 엉망인 것 같은데..음.; 모르겠네요;

아ㅡ그리고 하우스먼의 시는 한국에 번역된 것이 거의 없습니다.
(한국에서는 영국문학은 잘 번역이 안되는 것 같더군요)(영국 것을 죄다 빼고 고전은 뭘 읽는거지?; 음.)
시문(詩文)쪽은 좀 취약한 편이라서 좋아하는 시임에도 제대로 운율을 살려 옮기지 못했습니다. 이점 죄송합니다.
하우스먼의 싯귀를 인용한 클래런스 대로우 변호사의 마지막 변론은 영미권 법대에서 교재로 쓰일만큼 대단히 유명한(그리고 감동적인) 것입니다.

또한 본문을 읽다보니 왠지 이 글 속에서는 한번도 언급이 되지 않았던 것 같은데ㅡ
피살된 바비 프랭크스는 리처드 레브의 사촌이었습니다.
TAG 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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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The Leopold & Loeb Case (5)

5.정신과 의사들

몹시 덥고 환기가 안되는 법정은 단 300명의 사람들ㅡ뉴스 미디어쪽 인물이 200명이며 일반객석은 70석에 불과했다.

판사 존 R. 캐벌리는 예순 세살의 학자풍의 남자였다. 영국계 이민으로 태어나, 제철소에서 일하면서 칼리지와 법대를 졸업했다. 그의 경력의 끝자락에 시작된 이 재판에서, 그는 판사석에 앉아 배심원단에게 다섯번이나 최종선고문을 고치도록 했다.

주정부검사 로버트 E.크로우는 모두진술(冒頭陳述)을 했다: "본 사건의 피고 네이선 리오폴드 2세는 19세의 젊은이다. 또다른 피고 리처드 레브 역시 19세의 젊은이이다ㅡ이 두 사람은 지역사회주민들의 많은 존경과 선망을 받는 이들의 자녀이다. 이들의 부모는 부(富)와 면죄부(免罪符)등 줄 수 있는 한 모든 세상의 유리한 것들을 이들에게 전부 주었다. 이들은 이 지역사회에서 최고의 학교를 다녔고, 어렸을 때부터 개인 교사들이 따라다녔다. 이 젊은이들은 점잖은 시카고 지역사회라는 세트 안에서 절대 다수의 다른 젊은이들처럼 행동했다ㅡ거대한 판돈을 위해 위험한 도박을 하고 싶은 잠재욕구를 가지고 있었던 것만 제외한다면. 그러나 위험한 도박은 이루어졌고, 쾌락을 위한 판돈은 유복한 동료가 감당할 수 없을만큼 커져버렸다."

"두 피고가 어떤 쪽이든 '돈'이 되는 목적의 음모에 함께 뛰어든 징후는 작년 10월 혹은 11월을 끼고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목적한 것을 얻기위해 그들은 준비가 되어 있었고, 냉혈한 살인을 범할 의도가 있었다."

네이선 리오폴드(아래 좌측), 클래런스 대로우 변호사(중앙), 그리고 리처드 레브(우측)
부유하고 교육수준이 높은 미청년들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한 시간 후, 그는 자신의 연설을 이렇게 마쳤다. "일리노이주(州)의 주민들의 이름으로, 모성(母性)과 부성(父性)의 이름으로, 그리고 일리노이주(州)의 어린이들의 이름으로, 우리는 이 냉혈하고 잔혹하고 부도덕한 살인마들에게 사형선고를 요구하는 바이다."

그에 "늙은 사자" 대로우는 검찰측을 향하여 이렇게 대응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우리가 이 사건에서 발견한 또다른 끔찍한, 끔찍한 진실은, 이토록 젊은 나이의 두 소년의 목에 줄을 감는다는 것이 로버트 프랭크스나 지역사회의 평화와 안녕에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검찰 측은 캐벌리 판사 앞으로 증인들을 소환하기 시작했다. 검찰 측의 전략은 이 범죄의 끔찍함을 강조하기 위해 모든 '세부사항'까지도 자세히 공개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한마디로 이 범죄의 야만성에 밑줄을 그은 것이나 다름이 없었으므로, 반대신문 조차 거의 있을 수 없었다.

그러나 두 소년들은 머리 위에서 사형집행인이 그들의 머리 위에 올가미를 드리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가볍고 멀끔한 얼굴로 앉아있을 뿐이었다.

이튿날, 7월 23일 목요일, 법정이 열리기 전, 레브는 기자들에게 중요한 발표를 하겠다고 말했다: "우리는 오늘 하나의 크고도 심원(深怨)한 희망을 가지고 뭉쳤다" 레브는 화려한 어조로 말했다. "리오폴드씨와 내가 이번 문제를 숙고했고, 상호적인 결정을 내렸다. 우리는 같은 희망을 가졌다는 것ㅡ 어제 그랬던 것보다도 너무나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만한 것이다" 그는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한주간 동원된 증인만 81명. 크로우는 낙관했다. 그는 프랭크스 사건에서 의심할 여지없이 소년들의 유죄를 의심의 여지없이 입증했다. 물론, 소년들은 이미 자신들의 유죄를 인정했고, 재판기간 내내 너무나 명확한 것들이 장황하게 검토되었다.

헐버트 박사와 바우만 박사는 리오폴드와 레브의 삶에 대한 모든 상세한 설명 하나하나를 공부하고, 300페이지에 달하는 공식적 의사록(議事錄)을 철저한 보고서 형식으로 편집했다.
보고서는 "광기(insanity)가 정당하다고 인정될 수 있는지 아닌지 가부를 결정해라."라는 내용으로 만들어졌던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두소년들이「왜」바비 프랭크스를 살해했는가 이유를 알아내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것은 이 보고서가 리처드 레브가 8~9살 경 이미 자신의 범죄 성향이 있었다는 것을 밝힘으로서 그 의도가 명백해졌다.

레브는 돈과 물건을 훔쳤다.「이러한 도둑질에 있어서 죄의식이나 두려움에서 오는 어떠한 양심의 가책도 전혀 없었으며... 그는 붙잡혔을 때 자신의 기술 부족에 대한 부끄러움만을 느꼈다」사용을 위한 욕망보다 스릴을 위한 도둑질과 가게물건 훔치기가, 그의 틴에이저 내내 계속 되었다.

레브의 삶에서 리오폴드의 역할은 자신의 범죄행위의「공범자」였다. 제한된 동성애적 '호의'(리오폴드는 어떤 인터벌을 두고 레브의 다리 사이에 그의 음경을 삽입하는 것을 허락받았다)의「교환」으로, 레브는 자신의 진지함에서 확대된「범죄」에 리오폴드를 끌어들였다.

작은 물건을 훔치는 것을 졸업하자 그는 차를 훔쳐서 파괴하기 시작햇다. 학교 교사에게 장난전화를 걸어대던 것에서 화재경보를 장난삼아 울려대고 그것은 방화로까지 번졌다.

1923년, 그들은 친구의 가족들이 떠나있을 때 집을 털 계획을 꾸미게 되는데, 필요해질 때를 대비하여 리볼버를 가지고 갔다가 여차하면 방범원을 저격한 후 로프로 하녀를 묶어버리기로 했다. 다행히도, 그들의 차의 엔진이 망가졌고 계획은 무산되었다. 그 대신, 그들은 앤 아버에 위치한 레브의 "제타 베타 타우 남학생 우애회의 집"을 털었다.

이 헐버트-바우만 보고서는 주말 경 때맞춰 "도난을 당하"였고, 이것은 7월 26일 대량으로 출판되어 유포된다.(*역주: "stolen"이 강조되었다. '광기로 인한 범죄'로 사건을 몰기 위해 고의적으로 유포했다는 의심이 어린 문장.)

사건의 재공판이 열릴 때, 워싱턴 DC의 세인트 일리저베스 병원장이자 전미 정신의학협회(APA) 협회장 윌리엄 앨런슨 화이트 박사의 정신의학적 조언에 크로우는 격렬하게 반박했다.
"당신은 살인자의 머릿 속에 현미경을 들이대고 들여다면서 그 속이 어떤 상태인지 말해선 안된다. 왜냐면 만일 당신이 그가 미치광이라 주장한다면 그는 '책임'질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가 제정신이라야 그에게 책임이 지워진다. 그의 "정신상태"를 보려고 하지말고 사건을 둘러싼 "사실"을 보라ㅡ그가 아내와 방탕하게 놀아난 남자를 죽인 것인가? 만약 그렇다고 하면 죄의 경감의 여지(輕減)는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이들은 단지 냉혈한 살인마다. 여기에는 어떠한 자기 방어의 이유도 없었다. "광기에 의한 범죄"로 사건을 끌고 나가면서 과거에 전례가 없게도 유죄를 인정하고 들어갔다ㅡ우리나라의 법규는 이 사건이 반드시 배심원단의 손에 넘어가야 할 문제라고 말하고 있다"

대로우는 항변했다: "우리나라의 법규는 형벌의 가감(加減)에 관련되어 법정에서 어떠한 증언이라도 듣게 되어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실제로, 이 문제에 있어서는 사실상 어떠한 선례도 없었다. 며칠동안 이 합법적인 형태의 논란은 계속되었다.

공판 기간이 끝나갈 즈음, 대로우는 자신을 가장 저명한 법률가 중 한사람으로 만들어주었던 자신의 논쟁의 스타일과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지금, 그 시작부터 끝까지 이 사건의 모든 것을 종합해 말하자면, 이 소년들을 사형시키지 못하면 주(州) 검사님의 지위가 위태로워 질 것이라는 점이다. 나는 '사형 선고'라는 것에 대해 이번 사건에서와 보여진 것과 같은 식의 열정과 열의를 지금까지 단 한번도 본 적이 없다. 본 사건 이전의 수천건의 살해사건에서, 이보다 훨씬 더 잔혹한 사건들에서 조차도 말이다. 이전에 수천건의 살해사건이 있었으며, 이 소년들이 교수형에 처해지든 형무소에 보내어지든 간에 수천건의 사건들이 이후에도 발생될 것이다. 만약 이들의 목을 매다는 것으로 어떤 장래의 살인을 막을 것이다, 라고 생각된다면 나는 아마 그 생각에 찬성하겠지만, 그러나 그렇게 생각이 되지를 않는다...

"정상을 참작을 해주시는 것이 어떤가. 이들의 젊음은 또 어떤가? 왜? 간단히 말해 어린아이는 성인이 가지고 있는 삶에 대한 "판단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미성년자인 두명의 소년이 여기에 있다. 법은 그들에게 어떠한 종류의 계약도 금지하고 있다. 부모님의 동의없이는 결혼도 할수가 없다. 왜?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나이와 함께 오는 판단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충분히 책임질 능력이 없는 것이다..

"나는, 두 소년들을 교수형에 처하는 일을, 마치 자신들이 휴일을 보낼 방법이나 친지방문에 대해 말하는 것처럼 법률가들이 격식도 없고 무게감도 없이 부주의하게 말하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다."

그리고 대로우는 캐벌리 반사를 쳐다보며 존경어린 목소리로 조용하게 말했다.

"판결 전에 정신상태를 고려하지도 않고 사형 판결을 언도할 어떠한 재판장님도 이 쿡카운티에는 계시지 않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마침내, 캐벌리는 경감신청을 받아들여 증인의 증언을 듣는 것에 동의하였다. 대로우는 중요한 승리의 열쇠를 얻어낸 것이다. 피고 측 정신의들은 이제 증언하도록 요청될 수 있었고, 이미 세상에 잘 알려져 버린 헐버트-바우만 박사의 보고서도 법정 속기록에 남을 수 있었다.

몇가지 정보와 분석은 공판 중 증언의 한부분이었다. 그러나 이것들 모두는 재판 기록의 일부분일 뿐, 정신의학의 연구에 대한 정신의들의 의견들이 판정을 내릴 단 한사람, 캐벌리 판사에 의해 전부 읽혔다.

전체적으로, 정신의들의 보고서는 이 두명의 소년들이 살고 있었던 가정 생활과 사회적 환경에 대한 가치있는 통찰을 다루고 있었다. 그들은 소년들의 가치관과 윤리관에 대한 평가도 제공하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가족, 친구들의 가치관과 윤리관에 대치되어 혼란을 느끼고 있었다.

리처드 레브의 부모 문제에 이르러서, 정신의들은 썼다:

「앨버트 H.레브는 매우 공명정대하다. 그는 청소년들의 음주를 반대했고, 자주 그렇게 말해왔다. 소년들에겐 어떻게 비쳐졌을지는 몰라도, 그는 그다지 엄격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결코 체벌을 하지 않았다. 유년기의 초반, 그는 소년들과 놀이친구가 되어주는 아버지는 아니었다. 딕(리처드)과 그의 형제들은 그들의 아버지를 사랑하고 존경했으며 그 사랑과 존경을 잃고 싶어하지 않았다.」

「앤 보닌 레브는 사회적 지위가 높은 부유한 자라고 해도 유태인인 남자와의 결혼을 인정하지 않는 카톨릭계 대가족 출신이다. 그러나, 앨버트 레브의 친구들은 그녀를 완전히 받아들였고, 그녀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녀와 앨버트와 네명의 자녀들ㅡ앨런, 어니스트, 리처드와 토머스 모두를.」


앤에 대하여, 정신의들은 "침착하고, 예리하고, 민활(敏活)하며, 발랄하다"라고 파악했다.

정신의들은 리처드 레브를 완전히 정신병적 인격을 가진 것으로 표현하여 기술하였는데, 여기 리처드의 뜻밖의 이면을 보여주는 이야기가 있다.

모린 맥커넌은 저서「리오폴드&레브의 놀라운 범죄와 재판」을 통하여 리처드의 자동차 사고에 대해 언급했다.:
「그가 열다섯살이 되던 여름, 저녁부터 해질녘까지 폭주하던 그의 자동차는 어두운 길 모퉁에서 말과 운반차와 충돌하고 말았다. 그는 자동차 라이트도 점등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사고가 불가피했다는 말을 들었다. 사고를 당한 여성은 상처가 났고 그녀의 손자도 근소하게 부상을 입었다. 딕은 그녀가 병원에 가는 것을 도왔다. 그러나 그곳에서 그녀가 부상을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는 울다가, 정신을 잃었다. 그는 거의 집으로 호송되듯 가야만 했다. 그는 매일 꽃과 과일과 고급 음식을 들고 그녀의 병실을 방문했다. 그는 모든 병원계산서를 지불해주는 것 뿐 아니라 그녀의 집에 걸린 저당까지 청산해 달라고 자신의 아버지를 설득하게 되었다.ㅡ그리고 그녀를 치료하기 위해 오갔던 그 겨울 여행이, 그의 날카로운 신경을 산산이 부수었다.」

레브가(家)의 대저택 중 하나.
그가 대부호의 자녀라는 것은 말해주는 긴 담장.

4살이 되었을 때, 스트루더스라는 이름의 캐나다인 여성이 그의 가정교사가 되었다. 그녀는 그를 코치하고, 가르치고, 그의 공부에 힘을 북돋워 주는 등 그의 교육에 막대한 시간을 바쳤다. 리처드는 IQ가 160이었던 밝고 대담한 성격의 소년이었고, 그녀는 리처드를 조기입학시키는데에 성공했다. 그는 열두살에 초등학교 과정을 끝낸 후 열네살이 되던 해에 고교를 졸업했으며 그해에 시카고 대학에 입학하였다. 레브 부인과 다툰 이후, 스트루더스 양은 가정교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그녀와 만나 인터뷰한 정신의들은 "리처드는 평범한 소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불안정하다."라고 그녀가 말했다고 했다.「그녀는 그의 약간의 실수도 못본체 하지 않았고 그때마다 즉시 벌을 주었기 때문에, 그는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점점 더 기술적으로 습관적인 거짓말을 하게 되었다. 그녀는 그가 좀도둑이 되었다는 것과 탐정놀이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조금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집에서 도망치고 싶어서, 리처드는 미시건 대학으로 대학을 옮겼다. 그리고 17세라는 가장 젊은 졸업생들 중 한명이 되었다. 리처드는 나태했고, 무엇에건 의욕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높은 지능에도 불구하고 성적은 평범했다.

레브의 박식한 지적교육 안에 성(性)은 포함되지 않았다. 스트루더스양의 교육과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리처드는 그의 성(性)의 기초를 개인운전수와의 대화에서 배우게 되었다. 섹스는 그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게 되었고, 그는 그의 친구들보다 자신에게 성적인 부분이 부족하다고 믿게 되었다. 그의 미모, 교양, 부, 그리고 사회적 덕목들은 그에게 여성들과 함께 할 많은 기회들을 주었다. 그는 그러한 기회를 이용했지만, 섹스 혹은 여성들과의 영속적 관계는 그에게 있어서 우선순위가 될 수 없었다.

「배덕(背德)」은 리처드의 인격에서 빠져서는 안될 부분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거의 '완전'하게 가지고 있었다. 그는 배덕이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행위에 대해서 어떤 죄책감도 느끼지 않았다. 그의 과장되게 공상적인 삶은 그 자신을 범죄의 마스터로 생각하는 것에 맞추어져 있었다. 그는 완전범죄를 범한 후, 그 다음 그것을 그만두고 싶어했다.

화이트 박사는 법정에서 19세의 레브를 요약하였다.

「그의 반사회적 행동의 발단부터 시작하여 디키(리처드)의 인생 전반은, 매우 자기파괴적인 방향이었다. 그 자신은 매우 명확히, 그리고 진지하게 자살을 고려하고 있었다. 그는 나에게, 자신의 인생에 만족하고 있으며, 그것은 자신이 볼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았고, 인생의 전반조차 더이상 보여줄 것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보낸 인생의 끝자락에 와 있다.」

화이트 박사는 레브의 외향적 특징을 유치증(*역주:성인이면서도 행동이 어린아이같은 정신병리학적 증세)으로 보고 있었다. 그는 리처드가「실제로」바비를 살해했던 사람이라고 믿고 있었다.

힐리 박사는 레브를 조금도 존중하지 않았다: 나태하고, 의욕이 없으며, 얄팍하지만, 붙임성이 있고 외향적인 성격이라고 진단했다.「개인 소견으로는, '범죄' 그 자체가, 레브의 정신적인 부분의 병적인 동기부여가 낳은 결과이다. 병리학상의 분열적인 성격과 더불어 그가 정신적으로도 비정상이기 때문에, 범행계획 및 명령들이 가능했다.」

글뤽 박사는 레브에게 매료되어 있었다:나는 정상적인 정서의 부분들이 완벽히 결락(決裂)된 이번 케이스에 몹시 놀랐다. 그는 이 상황에 관계된 사람들에 대해 어떠한 자책감도, 후회도, 연민도 보여주지 않았다. 그는 나에게, 자신이 일격을 가했던 사실을 포함하여 범죄의 세부사항들을 털어놓았다.」

이 증언은 두 사람 중 어떤 사람이 실제로 범행을 했는가를 말하는 가장 의미깊은 단서였다.

네이선 리오폴드는 정신의들이 매우 동정적인 태도를 보였던 소년이었다.
그는 네명의 형제들 중 가장 어렸고, 베이브(Babe)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선천적으로 많은 병이 있었던 병약한 소년이었다. 갑상선기능항진증, 송과선석회증(*역주:내분비질환 중 하나)에 관련된 질환들. 그는 오래 살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가 17세가 되었을 때, 그의 어머니는 신장염으로 사망했다. 그녀는 그의 출생과 맞바꾼 건강에서 회복되지 못했고, 네이선은 그로 인해 죄책감을 지고 살고있었다.
모친의 사망 후 이웃에 살고 있었던 그의 이모인 버디 슈왑 부인이 그 가정의 주부가 되었다.

네이선은 IQ 210의 천재였다. 대략 그는 4개월의 나이에 그의 첫번째 단어를 말했다.

네명의 형제들을 돌보던 몇명의 간호사가 있었다. 성공한 사업가 네이선 리오폴드 1세는, 이모 버디와 가정교사들에게 아이들의 양육을 일임했다.

네이선은 그가 유별나게 튀어보이지 않는 하버드를 다녔다. 그의 평범치 못한 지능은 자신이 동급생들보다 우월하다고 느끼게 했고, 그는 그것을 동급생들에게 직접 표현하였다. 그의 동창생들은 그를 교만하고 자부심이 강하다고 생각했다.

그가 열여섯이 되었을 때, 그는 리처드 레브와 함께 시카고 대학에 진학했다. 이후 레브가 미시건 주립대학으로 옮겨가자, 리오폴드는 그를 따랐다.
그러나 리처드는 자신은 우애회에 열중해 있으면서도 네이선은 그곳으로 오지 못하게 했다. '제타 베타 타우 우애회'는, 리처드가 리오폴드와 어울려 다니지 않을 것이며 그로서 리오폴드와의 동성애에 관한 소문을 진압한다는 조건으로 리처드의 가입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네이선은 시카고로 돌아왔고, 파이 베타 카파 클럽(*역주:성적이 우수한 미국대학생, 졸업생으로 조직된 친목단체)에 들어갔다. 그는 동대학에서 법대에 입학했다.

정신의는 이렇게 기술했다.「리오폴드는 쉽게 친구를 만들지 못했고 이성과 함께 하는 것에 특별한 어려움을 느꼈다.」그가 가진 성경험은 매춘부들과의 그것이 전부였다. 그는 여성들에게 진심으로 매력을 느끼지 못했고, 여성이 지적으로 열등한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의 어머니의 죽음은 그에게 매우 깊은 영향을 끼쳤다. 그는 그의 어머니의 고통을 덜어주지 못한 신(神)과 조금도 화해할 수 없었으며, 그녀의 죽음 후 무신론자가 되었다.

정신의들은 리오폴드가 정직하고 솔직하다고 생각했다. 리처드와 비교되는 부분이다.

「리오폴드는 비록 자신이 범행을 하고싶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범행을 통해 자신이 어떠한 쾌감도 느끼지 않았음을 강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단짝에게 범행의 책임을 뒤집어 씌우려는 어떠한 시도도 하지 않았다. 친구와의 우정이 그의 전부였으며 친구가 원하는 것이라면 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에게는 특징적인 성적 경향이 있었고, 감수성이 강한 그에게 있어 보통의 헤테로섹슈얼한 관계에서 만족될 수 없었던 어떤 부분이 의심의 여지없이 깊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는《완전한 육체》에 대한 자신의 열망을 환상을 통해 (육체적인 열등감을) 보상받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남자'라는 자신의 열망에서 비롯된 노예로서의 리오폴드를 보게 된 것이다.」


'노예공상'은 5살부터 시작되었고 그것은 그의 청춘 내내 따라다녔다.

「이 공상 속에서는 어떤 방식으로든.. 그는 왕의 목숨을 구한다. 왕은 감사하며 그에게 자유를 주고 싶어하나, 노예는 거절한다.」

리오폴드는 그의 철학에 대해 정신의들과 이야기하던 중 이부분에서 특별한 반응을 보였고, 그들이 이 보고서를 쓸 때 상당히 사실에 근접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감상적이거나 감각적인 부분이 배제되어 있다해도, 철학적인 부분은 지능 쪽이 확실하게 다스리고 있다. 리오폴드가 저지른 유일한 범죄는 '지능의 범죄'이자 '지능의 실수'였다. 그리고 이 부분은 그에게 충분한 책임이 있다.」

《완전한 인간》이 되고 싶었던 그의 계획 안에서, 리오폴드는 디키(리처드)에게 90점을 주었고, 자기 자신에겐 63점, 자신들이 알고 지내던 지인들은 30에서 40점 정도를 매겼다.

화이트 박사는 프랭크스 살인사건을 소년들의 비정상적 인격과 공상의 결과물로 보았다.「디키는 참여자가 필요로 했다. 그의 공상에서 범죄를 저지를 갱이, 바로 그 참여자였다. 실제, 베이브(리오폴드)는 그의 참여자였다... 베이브는 그들 자신을 왕과 노예로 상정함에 따라 육체적인 열등감과 지적인 우월감의 감각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팡질팡했다. 리오폴드는 디키를 왕으로 만들고 그의 왕국을 유지하게 하는 노예였다.
나는 베이브가 어째서 이 일에 가담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왜냐면 베이브는 딕키와 같은 어떠한 범죄 성향도 가지고 있지않기 때문이다. 나는 디키에게 혼자서 이런 일을 벌일 수 있는 기능적인 부분이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비뚤어져버린 인격으로 인해, 이 두소년들은, 결과적으로 프랭크스 살인이라는 감정적 일치점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힐리 박사는 이 두 소년들 사이의 일치점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였다.

"리오폴드는 특별한 날짜가 되면 레브의 다리 사이에 음경을 삽입하는 '특권'을 받았다. 한번은 두 달에 세번 정도 허락되었던 적도 있는데ㅡ그 두 달이 그들이 함께 이번 범죄 행위를 계속하게 된 기간이었다."

힐리 박사는 리오폴드를 편집적인 성격으로 진단했다. 네이선의 말에 따르면 "살인을 범하는가 마는가를 결정하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 저녁식사로 파이를 먹느냐 마느냐를 결정하는 것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 ...그것이 맛이 있든 없든." 이 말은 베테랑 정신의에게 대단히 충격을 주었다.

글뤽 박사는
리오폴드가 니체 철학의 초인(超人) 개념에 경도되어 있었다는 것을 역설하였다. 다른 정신의들과 마찬가지로, 글뤽 박사는 이 살인사건을 두 비정상적 인격이 함께 만들어낸 결과물로 판단하였다.

"나는 프랭크스 사건이 아마 두 개의 정신병리학적 부조(不調) 상태의 인격이 기묘하게 조화되며 만들어낸 필연적인 결과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인격에서 그러한 양상을 각각 누가 어떻게 이끌어냈던 간에, 범죄의 가능성은 계획과 실행의 단계로까지 넘어서고 말았다."

크로우가 이 범행의 동기에 대해 물었을 때, 글뤽 박사는 대답했다.

"이 범죄에 직접적인 동기가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레브에게서《완전한 힘》,《효능》, 《'완전범죄'라는 공상의 실현》이라는 것이 범죄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리오폴드는 어떤가" 크로우는 물었다.

"나는 그에게서 어떠한 범죄의 동기도 느낄 수가 없었다."


 



(6)으로 계속.



+talk
파트 4,5의 법정 공방에서 한글로 옮기기 모호한 법률용어/정신병리학용어가 꽤 있어서 의외로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게다가 길기도 하지.(;)
전문(全文)을 읽어본 후 막히는 용어는 대충 야후 미국의 법률사이트와 백과사전을 검색해 참고하긴 했는데 적확한 것인지 전혀 확신할 수 없으므로-_- 혹시 법을 공부하시거나 알고 계시는 분은 아무것도 못봤거니 해주세요.;
오역도 있을테고, 무엇보다 정서를 안봤으니 문장의 어색함도 통과하시면 됩니다. ;;

이 짓거리;는 계속됩니다.(7회가 끝입니다)
TAG 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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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The Leopold & Loeb Case (4)

4.클래런스 대로우

리오폴드와 레브의 이야기는 신문 지상을 장악했다. 트리뷴지는 그 이유를 설명했다.

『바비 프랭크스 유괴 및 사망사건의 해결은 시카고 연사(年史)와 미국 범죄사(史)에 전례가 없는 이러한 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게 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트리뷴지는 오늘 아침 이 사건에 관한 뉴스, 코멘트, 사진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겠다.』

『계획적 유괴와 살인에 나타난 사악한 영혼...유복하고 저명한 집안의 자녀들 연루...젊음의 높은 정신세계 도달 욕구가 건넨 잘못된 충동...어린이의 납치의「경험」-자백 중 기묘한 경구(警句)처럼 들리던 "깊게 열중할 음모(deep plotting)"는「욕망의 만족」을 위해 살인으로 이어져 마침내 거대한 사건 자체를 완성한다.』


대중은 이 범죄에 혼비백산했고, 신문은 신속한「복수」를 요구했다.

『이 사건을 인내하면서 우리의 생각과 감정에 독을 퍼뜨리는 것을 좌시할 수 없다. 모든 공중의 관심은 이것이 한번에 끝나주길 요구하고 있다』

시카고 헤럴드 앤 이그제미너는 이렇게 기술했다.

사건의 진실은 유태인 커뮤니티에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이러한 범죄가 유태인의, 사회적 엘리트에 빛나는 교양있고 잘 자란 집 아이들에 의해 범해졌다는 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들 가족들은「성공」의 사회적 역할모델을 그대로 구현하고 있었다. 앨버트 레브는 시어스,로벅 앤 컴퍼니(*역주:미국의 종합유통업체.1989년까지 시카고에 본사가 있었다)로 한창 잘 나가는 통신판매 비즈니스의 백만장자였다. 네이선 리오폴드 1세는 부유한 수송, 제조업계의 백만장자였다. 두 남자는 유태인 커뮤니티의 매우 존경받던 구성원들이었다. 두 사람은 심정적으로 동정받았다. 앨버트 레브는 심각한 심장마비가 있었으며 나이가 더욱 지긋하고 병악한 네이선 리오폴드 1세는 자신의 가족들과 함께 끔찍한 진실을 정면으로 직면하기 위해 노력했다.

메이어 레빈(*역주:리오폴드&레브 사건을 다룬 저작「강제Compulsion」의 저자)은 이렇게 적었다.:

「이 사건에서는 섬뜩한 '구원적인' 부분이 있다. 우리 자신들 사이에서 일어난 일ㅡ즉 희생자가 '다행히' 유태인이었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 사건은 기괴하고 센세이셔널한 암시만을 던질 뿐 사건의 '인종적 양상'이 공공연히 부각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살인자가 유태인이었다는 생각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자백의 잉크가 마를 즈음, 크로우는 소년들을 데리고 증거확인에 들어갔다. 바비 프랭크의 신체에서 특징적인 부분과 할례(割禮)의 흔적을 제거하기 위해 뿌려졌던 염산(hydrochloric acid)을 리오폴드에게 판매했던 점원이 나타났던 것이다. 소년을 살해하는데에 쓰인 끌은 그것이 차 밖으로 내팽개쳐지는 것을 목격한 남자에 의해 회수되었다. 노변에 버려졌던 바비의 신발은 기나긴 수색 끝에 발견되었다. 기타등등, 기타등등.

크로우는 그들이 그날 발견한 증거를 가지고 매우 만족해하였다. "우리에겐 내가 형사사건 에서 지금까지 보았던 중 가장 결정적인 물증이 있다."고 발표했다.

그 날, 리처드의 삼촌인 제이콥 레브와 저명한 변호사 벤저민 바하락은 소년들이 머물었던 곳들을 입증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헛수고였다. 두 소년들은 절망적으로 변호사가 필요한 상황에 이르렀다.

당일 저녁 늦게, 제이콥 레브는 미국 최고의 저명한 변호사 중 한사람의 아파트로 찾아갔다. 그는 아내와 침실에 든 예순일곱살의 클래런스 대로우를 침대 밖으로 끌어냈다.
대로우는「패배자」를 사형목줄(*)에서 끌어내리는 데에 도전하고 싶다는데에 자신의 명예를 걸게 되었다.(*역주:20세기 초엽 일리노이주(州)에서는 교수형을 채택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죽음 대신 종신형을 달라" 제이콥 레브는 그의 조카와 리오폴드를 위해 간청했다. "그것이 우리가 바라는 모든 것이다. 어떠한 댓가도 지불할 것이다. 모쪼록, 사형만은 피하게 해달라."

대로우는 요금이 아니라 두 소년을 사형대로부터 지켜내기 위해 사건을 맡게 되었고, 그는 이제 죽음의 댓가(사형)와 전투할 유일한 기회를 쥐었다. 이 사건은 온 나라와 세계에 걸쳐 그의 명성을 쌓을 기회였다.

두 소년들은 자신들을 방어할 수 있는 상황에서는 이미 회복할 수 없이 멀어져 있었다. 그들 자신의 자백 뿐 아니라, 증거물의 중요성, 그들을 체포한 경찰, 언론의 입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것들까지도, 대중들에게 있어 그들을 적으로 돌리게 만드는 것들이었다.

리오폴드는 한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린 적어도 세번 이상 모든 세부 사항을 동원한 납치 예행 연습을 했었고 거기엔 단지 우리가 납치하고 살해할 남자애가 하나 없었을 뿐이다. ...단순한 실험일 뿐이었다. 마치 핀으로 딱정벌레를 찌르는 곤충학자와 마찬가지다. 우리는 쉽사리 정당화될 수 있다."

레브는 경찰서장에게 말했다. "이것은 내가 기획한 것이다. 나는 감옥에서 2,3년 보내고 풀려나 새로운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소년들이 말하고ㅡ또 말하는 것을, 경찰은 주의깊게 기록했고 신문은 맹렬히 보도했다.

대로우는 다음날 사건의 중심부에 진입했다. 6월 1일 일요일, 그는 제이콥 레브, 벤저민 바하락과 함께, 소년이 선교사처럼 다른 증거들을 지껄여대는 행동를 거두기만을 기다렸다.
그들은 두 소년의 면회를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 크로우는 세명의 정신과 의사ㅡ법의학 정신의ㅡ를 검찰측으로 불러들였다고, 소년들이 사건 당일 오후 유죄로 입증될 만큼 '제정신'이었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인터뷰 자리를 만들었다.(*역주:본문 중에서 전통적 양식의 정신과의사(alienist)와 정신병의사(psychiatrist)로 분리된다.)

이튿날 이른 아침, 크로우의 사무실에 들른 대로우와 바하락은 두 소년을 그들의 가족이 그들을 만날 수 있는 주정부의 형무소로 이송할 것을 요구했다. 그들의 요구는 크로우에 의해 다시 한번 묵살되었다.
그 이유는 그의 정신의들이 소년들의 정신상태에 대하여 추가 증거를 확보할 수 있게 되기 위해서였다. 크로우는 대로우가 소년들을 "광기(狂氣)에 근거한 무죄"를 주장하게 될 것이 당연하다고 보고 있었고, 검찰당국이 소년들이 그들의 변호사에 의해 제지되어 증언에 손해를 보게 되기 전에 충분한 증거를 끌어모으길 원했다.

그러나 대로우는 존 R.캐벌리 판사의 법원명령을 내밀었으며, 소년들은 주(州)형무소로 이송되기 전 자신들의 변호사를 면회하는 것을 허락받았다.

"예절바르게 굴어라. 착하게 굴어라." 대로우는 그들에게 말했다. "그러나 크로우에게 더이상의 어떠한 도움도 주지 마라. 단지 조용히 입을 다물고 어떠한 질문에도 대답을 거부해라."

일상생활이 '채워'지고, 소년들은 감옥 안에서 조차 뜻대로 할 수 있게 되었다. 스타인 레스토랑에서 고급스런 음식이 들어오고, 그간의 '금욕주간' 동안 할 수 없었던 담배와 술이 비밀스레 반입되었다.

1924년 6월 5일, 대배심(大陪審)은 두명의 소년들에게 11급 살인죄와 16급 유괴죄로 기소하였다.(*역주: 이 부분의 번역이 정확하지 않습니다. 당시 일리노이 주의 법률이 어땠는지 모르겠고, 단순히 제가 문장을 오해한건지도 모릅니다. 11급 모살죄도 있나?;;) 이부분 바로 그다음날, 그들의 자세한 자백문이 신문지상을 통하여 유포되었다. 대중들은 비단 사건 자체 뿐 아니라, 법적으로 오간 취득액(取得額)의 문제로 소란을 피웠다. 유복한 레브 가족과 유복한 리오폴드 가족은 자신들의 아들들을 교수대에서 구해내기 위해 클래런스 대로우에게 백만불을 지급할 예정이라는 사실이 뉴스 미디어에 의해 떠들썩하게 알려졌다. (*역주: '소란떠는 것(incense)'을 '타는 향(香)'으로 빗대어 언론의 '부채질(fan)'을 통해 더욱 타도록 부추겨졌다고 비유했다.)

대로우의 도움과 더불어, 이들 가족들은 공동 성명을 작성했다. 이것을 짧게 축약하자면 "법률요건이나 의학적 재능에 소비할 수 있는 돈의 합계는 무한이다" 라고 하겠다.

벤저민의 형 월터 바하락은 신속하게 전미 정신의학협회(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APA)의 연차집회에 참석하여 몇명의 최고전문가를 불러들였다. APA 협회장 겸 워싱턴 DC의 세인트 일리저베스 병원장 윌리엄 A.화이트 박사, 뉴욕주(州) 싱싱형무소의 정신의학 클리닉 책임자 버너드 글뤽 박사였다. 크로우의 전통적 방식의 정신과 의사들과는 다르게, 바하락의 전문가들은 잠재적 동기와 심리적 강제(强制)를 믿었던 혁신적인 프로이드학파들이었다. 두명의 다른 정신과 의사와 함께 또한 해롤드 헐버트 박사와 칼 바우만 박사까지 고용되었다.

리오폴드는 정신과 의사와의 면담들을 좋아했다. 그의 퍼스낼리티가 이 '전문가'들에 의해 현미경 아래에 놓이는 것은 그의 에고를 강렬하게 만족시켰다. 이것은 그에게 자기 자신에 대해 연속적으로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레브는 그 과정들을 몹시 지루해했고, 가끔 잠이 들기도 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가족들이 불행에 빠진 부분을 불편해 했을 뿐, 두사람 중 누구도 자신들의 냉혈한 범죄에 대하여 유죄인정 혹은 가책을 드러내는 기색 따위를 보이지 않았다.

1924년 7월 21일,「일리노이 주민 대(對) 네이선 리오폴드 주니어,리처드 레브」사건 공판이 대법원 형사재판소에서 있었다. 판사는 존 R.캐벌리였다.

대로우는 판사석에 접근하여, 낮은 음성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첫째로 그는 재판의 초점을 법정 밖 사실을 끌어들여 흐트러뜨릴 생각이 없으며, 검사측에서 '모살죄(謀殺罪)'와 '유괴죄(誘拐罪)'를 각각 기소한 사실을 방해할 생각이 없음을 일단 장담했다.

"우리는, 법정의 누구도 이 사건에 있어서 피고측이 석방되거나 행위들이 용납될 것이라고 믿고있지 않다는 것을 솔직하게 말하겠다. 우리는 피고가 사회로부터 영구히 격리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장고(長考)와 면밀한 토론 끝에 우리는 각 피고인을 위한 각각의 기소요건에 대한 무죄탄원을 철회하며, 유죄인정 청원으로 돌아서기로 결정했다."

클래런스 대로우 변호사의 법정 변호 장면

ㅡ법정의 모든 이들은 충격을 받았다. 그들은 대로우가 "광기의 사유(정신병)"로 무죄를 주장할 것을 기대했던 것이다.

대로우는 얼마의 시간동안 이를 계획하였고 가족들과 그것을 놓고 토론하였으나, 당일 아침까지도 당사자들에게는 말을 하지 않았다. 소년들은 그것이 사형대를 피하는 최고의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그들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크로우는 너희들에게 살인혐의와 유괴혐의로 기소할 예정이다. 그는 우선 살인에 대한 혐의로 기소할 것이다. 만약 그들은 이 항목의 평결(評決) 결과가 '사형'이 되지 않을 것 같을 때 두번째 혐의(유괴죄)로 재판의 방향을 선회하게 될 것이다. 그가 재판의 방향을 선회하기 전에 그에게서 두번째의 기회를 빼앗는 오직 한가지 길이 있다ㅡ그러기 위해서는 "충격적" 요소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대로우의 이론에는 그 이상의 근거가 있었다. 유죄를 인정하는 단계에서 소년들은 배심원 평결을 피할 수 있다. 이제 재판관은 혼자서 판결문(sentence)을 결정하게 될 것이다. 대로우가 "광기로 인한 무죄"로서 그들을 변호하기로 했다면 그들은 배심원 평결에 올랐을 것이다. 소년들이 저지른 범죄와 주장들이 대중들의 강력한 비난을 받고 있는 가운데에서 소년들이 어떤 배심원에게서도 좋은 결론을 얻을 수는 없었다.

대로우는 배심원들에 의한 '공유된 결정'은 사형판결을 비교적 쉽게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캐벌리 판사에게 있어서는 아직 어린 소년들에게 사형을 언도하는 결정은 살아 가면서 혼자 지고 나가야할 만한 결정이었다. 대로우는 이것이 캐벌리가 소년들의 정신건강상태와 그들의 젊을을 고려할 수 있는 '점잖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느끼고 있었다.

캐벌리는 판사석으로 피고인을 불렀고, 각각의 소년들에게 질문했다: "피고의 기소사실이 유죄로 판정된다면, 본 법정은 피고들에게 사형을 언도할지도 모른다; 본 법정은 피고들에게 주어진 천수(天壽)를 형무소에서 다하라고 판결할지도 모른다; 본 법정은 적어도 14년 이상의 기간을 구형할지도 모른다. 이제, 피고들은 자신들의 청원의 중대성을 깨달았으며, 여전히 유죄인정을 원하는가?"

두 소년은 답했다. "네"
그들은 자신들이 처한 곤경의 크기를 이해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캐벌리 판사는, 매우 진지한 얼굴로, 자신이 처한 곤경의 크기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소년들이 사형을 당하고 안당하고는 오직 그 혼자 결정해야할 문제였다. 원래 그가 원한 것은「결정」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5)로 계속.



+talk
읽는데 5분 걸린 글이 읽으면서 초역 찍어넣는데에 1시간을 잡아먹는군요; 법률용어 검색하느라고-_-
TAG 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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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The Leopold & Loeb Case (3)

3.체포

주(州)정부 검사 크로우는 게걸스런 기자들로 경찰서를 포위시킨 이 저명한 지역명사의 아들을 몹시 신중히 다루기로 했다.
그래서 네이선 리오폴드는 서(署)로 소환되는 대신, 1924년 5월 29일, '사려깊게 심문받을 수 있도록' 라살레 호텔의 한 방으로 불려오게 되었다.

오후가 되자, 경찰은 리오폴드와 같은 조류학과 학생들이라도 들이닥치기 전에 그의 집으로 갔다. 그들은 그에게 안경을 잃어버렸는지 물었고, 그는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나중에, 그들은 집을 수색했으나 그의 안경은 보이지 않았다.

결국 리오폴드는 안경이 그의 것이라는 사실을 실토했는데, 바비 프랭크스가 죽기 며칠 전인 토요일과 일요일(5월 17일과 18일) 다른 소년 두 명과 울프호(湖)로 조류 관찰을 나갔다가 잃어버렸음이 틀림없다고 확언했다. 그때 그가 넘어졌었는데, 아마도 그때 그의 가슴 주머니에 있던 안경이 바닥으로 떨어졌던 것 같다고 말한 것이다.

크로우의 보조 검사 중 한명이 리오폴드의 안경을 가슴 주머니에 넣고, 당시 안경이 떨어진 상황을 재구성해보았다. 안경은 주머니 밖으로 떨어지지 않았다. 심문은 좀 더 강해졌다.

사건이 일어나던 날 그의 행동에 대해 물었을 때, 처음에 리오폴드는 막연하게 대꾸했었다. 마침내, 그는 사건 당일 대부분의 시간을 친구 리처드 레브과 함께 링컨 공원에서 먹고 마시며, 새를 보면서 지냈다고 말했다. 저녁식사 후, 그들은 두명의 소녀를 차에 태워 드라이브를 했다. 리오폴드의 숙모와 숙부가 그를 집에 데려가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레브의 집으로 돌아가기 직전까지.

점점 세부적으로 변해감에 따라, 리오폴드는 점차 빠르고, 차분하게 대답했다. 질문자는 그에게 개인적인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1923년, 리오폴드는 시카고 대학에서 학위를 받았고, 그 후 법대에 입학할 생각이었다. 그는 그 해부터 하버드 법대에 다닐 계획이었다. 그의 언어 실력은 5개 국어가 유창하고 15개 국어의 일상적 대화를 할 수 있는 것에 달한 상태였다.

그는 자신이 해먼드 멀티플렉스 타이프라이터(*역주:대형타자기.상품명)를 가지고 있고ㅡ이것은 경찰에 의해 압수되었다ㅡ협박장을 기안할 만한 충분한 교육을 받았음을 인정했다. 그는 비록 그 협박장이 법률가에 의해 쓰여진 것은 아니지만 몇몇 법률적인 단어가 쓰여졌다는 것 역시 동의하였다.

리오폴드는 프랭크스 가족을 알고 있지 않았으며, 시카고의 다른 모든 이들과 마찬가지 정도로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경찰이 그의 개인서한 약간을 압수하자, 리오폴드는 자신이 이탈리아어(語)로 저술된 성도착행위를 주제로한 작품들을 번역할 예정이었다는 것을 인정하였다ㅡ그러나, 자신은 지금까지 그의 친구 리처드 레브과 어떠한 성적인 행위에도 관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리오폴드는 새벽 4시까지 심문을 받았는데, 그 후, 그는 다음 심문 때까지 경찰서에서 잠을 자도록 조치되었다. 그는 친구 리처드 레브가 자신의 소환 바로 직후에 소환되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리오폴드와 마찬가지로, 레브는 라살레 호텔의 다른 방에서 심문을 받고 있었다.

레브는 프랭크스가 살해되던 날 그들의 행동에 대하여 리오폴드와는 다른 증언을 했다. 그는 오후 동안 리오폴드와 함께 있었으며, 석식시간에 헤어졌다고 말했다. 레브는 그날 밤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기억하고 있지 않았다.

의심의 여지가 없게도, 리오폴드는 두 소년의 친구인 어떤 소년을 통해 비평 메시지를 레브에게 전달했다: "베이브(Babe.리오폴드의 애칭)가 그러는데, 두명의 소녀에 대한 사실을 경찰에 말하라고 했다. 경찰에게 네가 그들과 무엇을 했었는지 진술하라고 했다. 지금보다 더 문제가 꼬일리 없다. ㅡ이렇게만 말하면 네가 이해할 거라고 했다."
갑자기, 레브의 진술은 리오폴드의 것과 동일한 내용이 되었다. 레브는 자신이 만취해 있었기 때문에 몇몇 세부사항이 애매모호하며 아예 잊어버리기도 했다는 것이다.

크로우와 보조 검사들은 소년들의 이야기를 믿기 시작했다. 이 주정부 검사는 그들을 사치스런 저녁식사에 데리고 나갔다. 저녁식사 후, 소년들은 기자들에게 온화하게 말했다. "우린 경찰들이 우리를 억류하는 것에 대해 비난할 생각이 없다." 리오폴드는 시카고 트리뷴에 말했다. "나는 안경이 발견되기 전 토요일과 일요일에 배수관 인근에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안경을 그곳에서 잃어버렸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두 명의 각각 다른 기자는, 리오폴드가 학생법률연구그룹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연구그룹 멤버들을 통하여, 리오폴드가 평상시에 해먼드 타자기로 연구노트를 작성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언젠가 단 한번, 그가 이동식 타자기를 사용한 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기자들은 리오폴드가 썼던 연구노트 두장을 각각 찾아내어, 협박장에 쓰여진 타이핑의 상태와 비교해 보았다.
연구노트의 몇몇 부분의 타이핑 상태가, 협박장에 씌여진 타이핑 상태와 일치했다.

리오폴드는 그가 이동식 타자기를 이용했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러나 타자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부정했다. 그의 집이 수색당했지만, 이동식 타자기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하녀는, 몇주 전 그의 집에서 이동식 타자기를 보았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크로우와 보조검사는 계속 수사를 하고 있었다. 5월 31일, 그들은 리오폴드의 개인운전수와 만났다. 살인이 있던 날 낮에, 운전수는 리오폴드의 차를 하루종일 운전했다. 게다가, 운전수는 그가 저녁에 퇴근하여 집으로 돌아갈 때 차고 안에 차가 주차되어 있었다고 단언했다. ㅡ소년들은 바비 프랭크스가 사망하던 날 낮과 저녁 자신들이 리오폴드의 차를 가지고 나가 운전했었다고 경찰에 진술했었다.

경찰은 각각 다른 방에서 그들을 강하게 심문했다. 레브는 차에 대한 거짓말에 직면하자, 누가 그렇게 말하더냐고 반문했다. 그것이 리오폴드의 운전수였다는 답을 들은 후, 레브의 얼굴은 창백해졌고, 크로우를 향해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 보라고 말했다.

이어지는 두시간에 걸쳐, 새로운 이야기가 나왔다.

본질적으로, 전체적인 살인/유괴 계획은 두명의 지루한 학생들에게 즐겁게 지적으로 도전하게 하는 정교한 게임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확신」하는 것을 개발하고 정련하는 것을 대단히 즐기고 있었고 그것은 "완전한 범죄"였다. 자신들의 뛰어난 지능에 매우 적합하게 어울리는.
리처드 레브(아래 좌측), 크로우 주정부검사(중앙)
그리고 네이선 리오폴드(아래 우측에서 두번째)

그들에게 있어서, 체포되지 않고「몸값」을 모으는 것이 유괴나 살인보다 더욱 어려운 문제였다. 그들은 몸값을 받아낼 각각 다른 몇개의 계획을 함께 조립했고, 각 계획을 부지런히 연구했다.

마침내 그들은 자신들이 사용할 계획에 대해 합의점에 도달하였다.
그들은 우선 소년의 아버지에게 기차역 부근의 약국으로 가라고 말한다. 그들은 약국에 도착한 프랭크스에게 전화를 걸어서 수분 내에 발차할 어떤 열차에 올라타라고 말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경찰에는 신고할 수 없다. 열차 안에서, 희생자의 아버지는 종이를 발견한다. 종이에는 사전에 지정된 장소에 도착할 때 기차 밖으로 돈가방을 던지라고 적혀있다. 두명의 소년들은 그것을 회수하기 위해 기다리게 될 것이다.

유괴는 수개월동안 준비되었지만, 희생양은, 유괴 당일 몸값을 지불할 수 있는 부자 아버지를 둔 아이로 '간택'한다. 또한, 희생자는 차로 유인하기 쉽도록 둘 중 하나는 안면을 익히고 지내던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들은 희생자를 살해하기로 냉담하게 결정했고, 그렇기 때문에 신원이 파악될 어떠한 것에도 거리를 두었다.
그들은 이제 부유한 하버드 인근을 차로 돌다가 가장 편리한 소년을 임의적으로 선택할 것이다.

어느 지점에 이르자, 그들은 심지어 자신들의 아버지(들)이나 형제(들)을 유괴하거나 살해하는 것을 고려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만일 자신들의 가족이 관련된다면 너무 많은 정밀 조사를 받게 될 것이라고 계산했다.

그들은 그들의 희생자가 탈주하거나 발견될 어떠한 기회도 없애기 위해 신속하게 살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희생자가 살해되면, 사체의 처분이 최우선으로 시급했다. 울프호(湖)의 배수구는 리오폴드가 그곳에 새관찰여행을 빈번하게 출입했었음에도 불구하고 발견하지 못했을 정도로 은밀했기 때문에 장소적으로 이상적이었다. 그들은 배수구에 희생양을 던져서 무덤을 파야하는 것만은 피했다.

그들의 차 중 한개를 이용한다면 추적당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그들은 정교한 계획 하에 가명으로 차를 임대하였다. 추적을 해도 발각되지 않도록 그들은 자동차 번호판도 가렸다.

사건 당일 저녁 수업이 파한 후, 리오폴드와 레브는 하버드 부근을 배회했다. 몇몇 이유로 퇴학당하여 인근에서 어슬렁거리는 학생들이 있었다. 저녁 식사 시간이 되어가자, 이제 대부분의 학생들이 하교했다.
그리고 그 다음, 그들은 바비 프랭크스를 발견했다.

리처드는 바비를 알고 있었다. 그는 이웃이었으며, 레브가(家)의 대저택에 딸린 테니스 코트를 이용했다. 리처드는 그에게 특별한 테니스 라켓을 보라고 권했다. 바비는 이에 응했다. 그가 차에 오르자 마자, 바비는 끌에 의해 머리를 강타당했고, 목구멍 속에 천이 밀어넣어졌다. 그것이 그의 질식(窒息)에 기여하였다.

죽거나 혹은 무의식 상태인 바비는 뒷좌석에서 발깔개(rug)에 의해 덮여졌고, 두명의 소년은 인디애나주(州) 경계를 향해 차를 몰았다. 그들은 황폐한 길 위에 차를 세운 후, 소년의 옷을 발가벗겨, 노변(路邊)에 옷가지 대부분을 버렸다.

그들은 해먼드의 핫도그가게에서 저녁을 먹었고, 어두워 질 때까지 그곳에서 머물렀다. 그 다음, 그들은 비포장도로를 달려 울프호(湖) 주변의 늪지쪽으로 갔다. 배수구에 바비의 사체를 유기한 후, 그들은 집으로 차를 몰아 돌아왔다. 딱 한번, 리오폴드가 그의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그들이 늦어질 것이라고 말할 때와, 제이콥 프랭크스에게 전화를 걸어 그의 아들이 유괴되었다고 말할 때만 차를 세웠을 뿐이다. 그들은 프랭크스의 집으로 몸값이 적힌 협박장에 '특별배달우표'를 붙여 발송했다.

그들은 레브의 집으로 가서 핏자국이 묻은 그들의 웃가지를 태운 후, 렌털한 차에 난 핏자국을 없앴다. 그 날 밤, 두 소년은 카지노에서 밤을 보냈다. 그들은 범행에 사용한 끌을 레브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창 밖으로 던져버렸다.

이틑날, 그들은 몸값을 빋아내는 계획을 완성하고, 인디애나주(州) 미시간 행(行) 기차의 막차 전화부스 안에 유괴 노트를 넣어두었다. 리오폴드는 제이콥 프랭크스에게 전화를 걸어 약국의 주소를 불렀다. 제이콥 프랭크스가 약국에 오지 않자, 그들은 자신들의 웅대한 게획이 실패했다는 것을 알았다.

레브는 이렇게 말하는 것으로 자백을 끝냈다. "나는 용서를 구할 생각이 없다. 그러나 범행 아이디어와 그 실행방법 등은 내가 떠올린 것이 아니며 모든 것이 리오폴드의 제안과 자극에 의한 것임을 충분히 입증할 수 있다. 더우기, 내게 (바비)프랭크스를 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레브의 자백에 직면하자, 리오폴드는 자백 외엔 거의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자백의 내용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약간의 '세부 사항'과 제일 중요한 '주요 원인'을 제외하면 서로 매우 유사했다. 리오폴드는 레브가 바비를 살해했다고 주장한 것에 반하여, 레브는 리오폴드가 살인을 범했다고 주장하였다.

처음에, 경찰과 언론은 레브의 진술쪽을 더 신뢰했고, 리오폴드를 자신의 뛰어난 지능으로 그의 온화한 친구를 지배했던『사악한 천재』로 간주했다.

그러나 다른 면에서는ㅡ그들 중 어느 쪽이 바비를 '실제로' 살해했느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은 주정부 검사 크로우의 기소로 모살죄(謀殺罪)와 유괴죄(誘拐罪)가 성립되어 교수형에 처해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4)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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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The Leopold & Loeb Case (2)

2.수사

바비 프랭크스의 죽음에 대한 조사에 박차가 가해졌다. 불운하게도 제이콥 프랭크스와 새뮤얼 에텔슨이 유괴범이 기다리기로 했던 약국의 주소를 잊어버렸기 때문에 한번의 기회는 이미 공중으로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유괴범이 보낸 택시가 곧 프랭크스의 집에 도착했으나, 운전수는 목적지에 대한 어떠한 지시도 받지 않은 상태였다.

잠시 후, 이스트 63번가의 '밴더보거트 앤 로스' 약국으로, '프랭크스씨'를 찾는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전화를 받은 사람은, 그곳에는 '프랭크스씨'가 없다고 말했다. 몇분 후, 프랭크스씨를 찾는 전화가 한번 더 걸려왔다. 이번엔 구체적으로 '제이콥 프랭크스씨'를 찾는 전화였다. 약사는 발신자에게 약국 내에는 그가 찾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수배금을 건 각각의 현상 수배령이 내려졌다: 제이콥 프랭크스는 5천불을 내걸었다. 모건 콜린스 서장은 1천불, 시카고의 양대 메이저 신문사 트리뷴지(紙)와 해럴드 앤 이그제미너지(紙)에서는 각각 5천불을 내놓았다.

주(州)정부 검사 로버트 E. 크로우가 수사담당관으로 선임되었다. 크로우의 보조원이자 새뮤얼 에텔슨의 조카인 버트 크론슨이